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인터넷 속도 세계 1위의 나라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이 된 진짜 이유

    태그 15개

    #대한민국, #인터넷강국, #디지털강국, #초고속인터넷, #IMF외환위기, #정보화혁명, #PC방문화, #전자정부, #5G, #세계최초, #한강의기적, #K컬처, #대한민국역사, #감동실화극
    #대한민국 #인터넷강국 #디지털강국 #초고속인터넷 #IMF외환위기 #정보화혁명 #PC방문화 #전자정부 #5G #세계최초 #한강의기적 #K컬처 #대한민국역사 #감동실화극

     

    후킹

    1997년, 세계는 대한민국의 기적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나라의 젊은 공무원과 이름 없는 기술자들은 땅속에 미래의 길을 묻기 시작했다. 전화선의 잡음에서 출발해 세계 최초 5G와 K-컬처의 날개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을 연결한 사람들의 이야기.

    ※ 1: 폐허 위에서 발견한 길

    1997년 12월의 서울은 유난히 추웠다. 빌딩마다 몇 개 층씩 불이 꺼졌고, 골목에서는 가게 문을 내리는 쇠붙이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다. 신문 가판대에는 부도와 감원, 외환위기라는 시커먼 글자가 걸렸다.

    그해 겨울,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부 부처에 들어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말단 사무관이었다. 내 이름은 한도윤이었다. 나라의 살림을 걱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었고, 윗사람의 지시를 거스르기에는 직급이 너무 낮았다.

    아버지는 평생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 통보를 받았다. 그날 아버지는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손에는 낡은 서류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도윤아, 소주 한 병 사 오너라."

    "무슨 일 있으세요?"

    "가서 사 오기나 해."

    아버지는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마루에 앉았다. 어머니는 봉투 안의 종이를 읽다가 주저앉았다. 명예퇴직 동의서였다. 이름은 명예였지만, 사실상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였다.

    "당신이 회사를 위해 바친 세월이 얼만데 이렇게 종이 한 장으로 끝내요?"

    "회사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지금은 누구를 탓할 때가 아니야."

    말은 담담했지만 소주잔을 든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라가 무너진다는 말은 그때까지 신문 속 문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굽은 어깨를 보는 순간, 그것이 한 사람의 밥상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알았다.

    며칠 뒤에는 금 모으기 행렬이 이어졌다. 어머니도 결혼식 때 받은 금가락지를 꺼냈다.

    "어머니, 그건 평생 간직하시던 거잖아요."

    "나라가 살아야 네 아버지도 다시 일자리를 찾고, 너희도 살지."

    "가락지 하나로 나라 빚이 갚아지겠어요?"

    "큰 강물도 작은 물방울이 모여야 생기는 법이다."

    어머니는 금가락지를 손수건에 싸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접수대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돌 반지, 결혼반지, 목걸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비녀까지 내놓았다. 얼굴은 어두웠지만 누구도 자기 차례를 피하지 않았다.

    '자원도 없고 돈도 없는데, 이 사람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상황은 더욱 참담했다. 사업 예산을 줄이라는 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회의실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칼날처럼 오갔다.

    "내년 계획은 전면 재검토야. 당장 먹고사는 데 필요하지 않은 사업은 모두 뒤로 미뤄."

    박 국장이 두꺼운 서류철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정보화 사업도 줄여야 합니까?"

    내 질문에 선배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한 사무관, 지금 나라에 달러가 없어. 은행과 기업이 쓰러지는데 컴퓨터 선부터 깔자는 말인가?"

    "하지만 선진국들은 정보화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그건 돈 있는 나라 이야기지. 우리는 지금 불난 집이야. 벽지 새로 바를 생각 말고 불부터 꺼야 해."

    회의가 끝난 뒤에도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난 집에서 벽지를 바르는 일. 정말 정보화가 그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그날 밤,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낡은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전화선 모뎀을 연결했다. 지지직거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방을 긁었다. 접속 화면 하나를 띄우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외국의 보고서 몇 장을 내려받는 동안 커피가 두 번이나 식었다.

    미국에서는 정보 고속도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계의 기업들은 공장과 항만뿐 아니라 데이터와 지식을 새로운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본과 유럽도 통신망을 미래의 기반 시설로 분류하고 있었다.

    나는 지도 한 장을 벽에 붙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뻗은 고속도로, 항구와 공단을 잇는 철도, 도시를 밝히는 전력망이 눈에 들어왔다.

    '산업화 시대에는 물건이 달릴 길을 깔았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에는 정보가 달릴 길을 깔아야 한다.'

    곁에서 야근하던 서윤희 주무관이 코트를 걸치다 말고 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안 가세요?"

    "윤희 씨, 만약 전국의 집과 학교, 회사가 빠른 통신망으로 연결되면 어떻게 될까요?"

    "전화 요금 걱정 없이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이 속도로는 편지 한 장 보내기도 답답하네요."

    "그래서 빠른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상황에 누가 돈을 내놓겠어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퇴직 서류와 어머니가 내놓은 금가락지가 떠올랐다.

    "우리가 가진 건 사람이에요. 배우려는 사람, 일하고 싶은 사람, 자식만큼은 공부시키겠다는 부모들. 그 사람들을 한꺼번에 연결할 수 있다면 자원이 없는 약점을 넘어설 수도 있어요."

    "위에서는 꿈같은 소리라고 할 텐데요."

    "지금은 꿈이라도 붙잡아야 합니다. 절망만 계산해서는 어떤 길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나는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적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거창한 표현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첫 문장을 짧게 썼다.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이어 정보통신망을 도로와 항만에 버금가는 국가 기반 시설로 보아야 한다고 적었다. 정부가 기본 방향을 세우고 민간의 투자를 끌어내며, 학교와 공공기관부터 연결하고,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요금을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벽이 밝아 올 무렵, 열두 쪽짜리 보고서가 완성됐다. 마지막 장을 출력하는 순간 프린터가 덜컹거리며 멈췄다. 종이를 빼내려 손을 집어넣다가 손가락이 베였다. 핏방울이 보고서 가장자리에 번졌다.

    "재수 없게 첫 장부터 피를 보네요."

    윤희가 휴지를 건네며 웃었다.

    "아니요. 쉽게 얻을 길이 아니라는 표시겠죠."

    "정말 이걸 올릴 생각이에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몇몇 사무실 창문은 켜져 있었다. 거리에는 새벽 첫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해야 합니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걸."

    보고서를 품에 넣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린 사무관 하나가 국가의 미래를 논한다며 비웃음을 살 수도 있었다. 인사기록에 건방진 사람으로 남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그 겨울 대한민국에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대신 잃을 것이 없었기에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아직 몰랐다. 떨리는 손으로 쓴 그 문장이 훗날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만나, 나라 전체를 연결하는 거대한 물결의 한 방울이 되리라는 것을.

    ※ 2: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보고서가 국장실 책상에 올라간 것은 사흘 뒤였다. 박 국장은 첫 장을 읽더니 안경을 벗었다. 회의실에는 예산 담당자와 통신 정책 관계자,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앉아 있었다.

    "위기가 곧 기회라. 말은 좋군."

    "감사합니다."

    "칭찬한 게 아니야. 한 사무관, 이 사업에 얼마나 들어갈 것 같나?"

    "정부 재정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민간 통신사들이 경쟁하도록 길을 열고, 정부는 장기 목표와 공공망 구축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산 담당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업들이 빚더미에 앉았는데 통신망에 투자하겠다고 나설 것 같습니까?"

    "경쟁할 수 있는 시장과 확실한 수요가 보이면 움직일 겁니다."

    "수요라니요? 우리 집에도 컴퓨터가 없습니다. 컴퓨터 한 대가 월급 몇 달 치인데 누가 그 비싼 인터넷을 씁니까?"

    회의실에 낮은 웃음이 번졌다. 나는 준비한 도표를 펼쳤다.

    "처음부터 모든 가정이 쓰지는 않을 겁니다. 학교와 기업, 공공기관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원도 없다는 나라에 무슨 장점이 있다는 건가?"

    "아파트입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파트?"

    "우리 국민은 도시의 공동주택에 밀집해서 삽니다. 넓은 땅에 집이 띄엄띄엄 있는 나라보다 선을 짧게 깔고도 많은 가구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한 동의 통신 설비만 갖추면 수십, 수백 세대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구기관에서 나온 장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화선 기반의 고속 접속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존 선로를 활용한다면 공사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박 국장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좋아. 기술적으로 된다고 치세. 국민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래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학생과 교사부터 인터넷을 배우고, 주부와 노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정보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망만 까는 게 아니라 국민이 그 길을 달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한 사무관은 나라 전체를 교실로 만들자는 건가?"

    "예. 공장 하나를 세우는 사업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서는 겨울비가 내렸다.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 서울의 건물들을 일그러뜨렸다.

    박 국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 보고서 하나로 국가 정책이 결정되는 건 아니야. 이미 여러 부처와 연구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하지만 젊은 사람이 위기 속에서 미래를 보려 했다는 건 마음에 드는군."

    가슴이 뜨거워졌지만, 국장의 다음 말은 냉정했다.

    "현장부터 확인해. 책상 위 숫자와 땅 밑 사정은 다르니까."

    나는 윤희와 함께 통신 시설 공사 현장으로 나갔다.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작업자들이 땅을 파고 관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오철수 반장이 흙 묻은 장갑으로 우리를 맞았다.

    "정부에서 나오셨다고요? 구두부터 갈아 신으십시오. 여기서는 보고서보다 진흙이 빠릅니다."

    그가 건넨 장화를 신고 공사 구덩이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수도관과 전선, 전화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사이로 새 선을 넣는 겁니까?"

    "말은 쉽죠. 도면과 실제가 다른 곳도 많고, 오래된 관로가 막힌 곳도 있습니다. 땅을 파면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하고, 상인들은 장사를 방해한다고 화를 냅니다."

    그때 한 주민이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도대체 며칠째 길을 파는 거요? 전화 잘만 되는데 또 무슨 선을 깔아!"

    오 반장이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어르신, 앞으로는 전화만 하는 선이 아닙니다. 집에서 은행 일도 보고, 멀리 있는 사람 얼굴도 보는 선입니다."

    "얼굴을 보긴 뭘 봐! 허튼소리 말고 빨리 덮어!"

    창문이 쾅 닫혔다. 오 반장은 피식 웃으며 다시 삽을 들었다.

    "다들 지금은 저럽니다. 전기 처음 들어올 때도 전깃불 아래 있으면 병난다는 사람이 있었다잖습니까."

    "반장님은 이 망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려운 건 모릅니다. 다만 길이 생기면 사람은 반드시 다니더군요. 경부고속도로도 처음엔 차가 몇 대나 다니겠느냐고 했다면서요?"

    오 반장의 말이 마음 깊이 박혔다. 책상에서 정보 고속도로라는 표현을 수십 번 썼지만, 그것을 실제 길로 만드는 사람은 추위 속에서 삽을 든 기술자들이었다.

    1998년과 1999년, 대한민국은 숨 가쁘게 움직였다. 정부는 정보화를 국가 회복 전략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고, 통신 시장에는 경쟁의 바람이 불었다. 사업자들은 더 빠른 속도와 낮은 요금을 내걸었다. 기존 전화선을 활용한 초고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가정의 인터넷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경쟁은 치열했다. 통신사 임원들이 회의실로 찾아와 항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요금을 낮추라고 하면 투자비를 어떻게 회수합니까?"

    "정부가 요금을 정해 주겠다는 게 아닙니다. 경쟁 속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라는 겁니다."

    "망 구축은 장난이 아닙니다. 산골과 섬까지 연결하면 손해가 납니다."

    "수익이 나는 도시만 연결해서는 국가망이 될 수 없습니다. 국민이 어디에 살든 정보의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그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려웠다. 산간 지역에서는 전봇대를 따라 선을 끌었고, 섬에는 해저 구간과 무선 연결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비가 내리면 공사가 멈췄고, 한파가 닥치면 땅이 얼어 곡괭이가 튕겨 나왔다.

    어느 밤, 오 반장이 손을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그의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관로 덮개가 미끄러졌습니다. 뼈는 괜찮다니 며칠 쉬면 됩니다."

    "몸부터 챙기셔야죠."

    "공사 일정이 밀리면 다음 동네 개통도 늦어집니다."

    "며칠 늦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오 반장은 굳은살 박인 왼손으로 병실 창밖을 가리켰다. 건너편 아파트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저 집들이 전부 연결되는 날이 온다면서요. 내가 손주에게 말할 겁니다. 저 길을 할아버지가 깔았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사 현장을 다시 찾았다. 깊게 파인 땅속으로 검은 관과 가느다란 선들이 이어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흙과 플라스틱과 금속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속으로 언젠가 아이들의 질문이 달리고, 기업의 거래가 달리고, 멀리 떨어진 가족의 안부가 달릴 것이었다.

    윤희가 내 옆에 섰다.

    "처음 보고서를 쓰던 날 기억하세요? 꿈같은 소리라고 했었는데."

    "아직은 꿈입니다."

    "아니요. 이제 땅속에 묻히고 있잖아요."

    멀리서 작업자들이 구호에 맞춰 굵은 선을 끌어당겼다. 진흙 위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손과 함께 역사가 지나갈 길을 땅속에 묻고 있었다.

    ※ 3: 골목에서 터진 디지털 혁명

    초고속망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내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길을 닦았다고 해서 모두가 그 길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는 여전히 비쌌고, 인터넷이 꼭 필요한 이유를 모르는 가정도 많았다.

    "망은 예상보다 빨리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입자가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으면 통신사들이 투자를 줄일 수 있어요."

    윤희가 가입자 통계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할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전자우편 몇 번 보내고 뉴스 조금 보는 정도라면 비싼 컴퓨터를 살 이유가 없죠."

    박 국장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한 사무관, 고속도로를 깔았는데 자동차가 없는 셈이야. 국민이 저 길에서 무엇을 할지 찾아야 해."

    나는 학교와 기업,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인터넷 활용 사례를 모았다. 그러나 정작 답은 정부 회의실도 연구소도 아닌 동네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신촌의 낡은 상가 2층에 새 간판이 걸려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 PC방.

    유리문 너머로 컴퓨터 수십 대가 보였다. 문을 여는 순간 담배 연기와 컵라면 냄새, 뜨거운 기계 열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어서 오세요. 한 시간 천 원입니다."

    계산대에 앉은 김상호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한 가장이었다. 퇴직금 일부와 빌린 돈으로 PC방을 열었다고 했다.

    "손님이 많습니까?"

    "처음에는 파리만 날렸죠. 그런데 온라인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자리가 없을 지경입니다."

    "온라인 게임 때문에요?"

    그가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학생과 직장인, 군복을 입은 휴가병까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같은 가상 공간에서 움직이며 소리를 질렀다.

    "왼쪽으로 가! 거기서 기다려!"

    "지금 들어가면 안 돼. 한 명 더 올 때까지 버텨!"

    "형, 부산 쪽 사람들이 들어왔대요!"

    서울의 골목에 앉은 청년이 부산의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가 화면 안에서 사라졌다.

    빈자리에 앉아 게임 화면을 지켜보았다. 가상의 성을 차지하기 위해 수십 명이 역할을 나눴다. 누군가는 앞에서 싸우고, 누군가는 물자를 모았으며, 다른 사람은 채팅창으로 작전을 전달했다.

    '이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사람들은 여기서 접속하고, 협력하고, 정보를 나누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그때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저씨, 그렇게 하면 금방 죽어요."

    "내가 이런 건 처음이라서 그래."

    "마우스 이리 줘 보세요. 이걸 누르고, 방향은 여기로 잡아야죠."

    소년의 손은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누가 가르쳐 줬니?"

    "그냥 하다 보니까요. 모르면 인터넷 게시판에서 찾아보면 돼요."

    "집에 컴퓨터가 있니?"

    "없어요. 학교 끝나면 여기 와요. 컴퓨터 학원보다 싸고 더 빨라요."

    집에 컴퓨터가 없는 아이도 천 원만 있으면 최신 장비와 초고속망을 사용할 수 있었다. PC방은 오락실이면서 통신 교실이었고, 값싼 디지털 체험장이었다.

    김상호가 계산대 아래에서 낡은 도시락통을 꺼냈다.

    "사실 저는 컴퓨터를 잘 모릅니다. 손님들에게 배웠어요. 고장 나면 단골 학생들이 고쳐 주기도 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이 일을 시작한 겁니까?"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IMF 때문에 직장을 잃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위기가 새 장사를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라에서 이런 빠른 선을 깔아 주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겠죠. 그런데 선만 있다고 장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재미를 찾았기 때문에 살아난 겁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부가 망을 만들었지만, 그 망에 숨을 불어넣은 것은 국민이었다. 위에서 계획한 정책과 아래에서 자라난 문화가 골목에서 만난 것이다.

    나는 다음 날 회의에서 PC방 이야기를 꺼냈다.

    "PC방을 정보화 확산의 현장으로 봐야 합니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사람도 인터넷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 간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학생들이 게임만 하다가 공부를 망치는 곳 아닌가?"

    "부작용은 분명히 관리해야 합니다. 흡연과 밤샘 이용, 청소년 보호 문제도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현상 자체를 오락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수많은 국민이 인터넷을 처음 배우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게임을 국가 산업으로 보자는 건가?"

    "게임만이 아닙니다. 전자우편, 동호회, 온라인 거래, 지식 검색이 함께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디지털 생활 방식을 익히고 있습니다."

    박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만든 사람보다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쓰임새를 먼저 발견한 셈이군."

    PC방은 전국의 골목으로 번졌다. 작은 읍내에도 간판이 들어섰고, 대학가와 주택가에서는 새 가게가 문을 열었다. 젊은이들은 밤새 전략을 짜고, 온라인 게시판에 정보를 올렸으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었다.

    어른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멀리 유학 간 자식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려는 부모가 컴퓨터를 배웠고, 자영업자는 물건값을 비교했으며, 구직자는 인터넷 채용 공고를 찾았다.

    우리 집에도 마침내 컴퓨터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기계하고는 안 맞는다."

    "아버지, 이걸로 일자리도 찾아볼 수 있어요."

    "신문 보면 되지, 뭐 하러 복잡한 걸 배워."

    어머니가 옆에서 타박했다.

    "당신은 회사에서도 새 기계 들어오면 제일 먼저 배웠다면서요. 나라가 바뀌는데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거예요?"

    아버지는 마지못해 의자에 앉았다.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화면의 화살표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이놈은 왜 내 말을 안 들어?"

    "힘을 빼세요. 살짝 움직이시면 됩니다."

    며칠 뒤, 아버지는 혼자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달 뒤에는 작은 부품 회사의 생산관리직 면접을 보러 갔다. 예전보다 월급은 적었지만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

    첫 출근 전날, 아버지가 컴퓨터 모니터를 닦으며 말했다.

    "나는 이 기계가 사람 일자리를 빼앗는 줄만 알았다."

    "지금도 그런 면은 있어요."

    "그런데 빼앗긴 사람이 새 길을 찾게 해 주기도 하는구나. 도구가 좋은지 나쁜지는 결국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모양이다."

    2000년을 전후해 대한민국은 거대한 디지털 훈련장이 되어 갔다. 속도가 느리면 사람들이 먼저 항의했고,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시험했다. 실패한 서비스도 많았지만, 그 실패조차 경험으로 쌓였다.

    어느 새벽, 나는 다시 김상호의 PC방을 찾았다. 모든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키보드 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이 심장 박동처럼 울렸다.

    정부는 선을 깔았고, 기업은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그 길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은 평범한 국민이었다. 실직한 가장이 차린 작은 가게, 천 원을 들고 찾아온 학생, 새로운 세상을 배우려는 부모들이 대한민국의 디지털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PC방을 나서자 차가운 새벽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골목 위 간판은 아직 환하게 빛났다.

    '이제 길 위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속도라면 우리는 따라가는 데서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대한민국이 세계의 앞줄에 설 수 있다는 확신을 품었다.

    ※ 4: 세계가 배우러 온 나라

    몇 년이 흐르자 해외 통계와 보고서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과 보급을 비교한 표에서 한국은 최상위권에 올랐고, 가정과 학교의 연결 속도는 여러 선진국을 앞질렀다.

    어느 아침, 윤희가 외국 신문 한 부를 들고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이것 좀 보세요. 한국의 수치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문의가 들어왔대요."

    "어디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인구 대비 초고속망 보급 수치요. 자기들보다 너무 높으니 통계 입력 오류인 줄 알았답니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외국의 사례를 베껴 적느라 밤을 새웠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의 수치를 의심하고 있었다.

    외국 정부와 기업의 방문도 이어졌다. 유럽의 한 통신 정책 대표단이 한국을 찾았을 때 나는 안내를 맡았다. 단장은 에리크라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서울 도심의 통신 시설을 둘러보면서도 계속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가 빠른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방은 사정이 다르겠지요."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기차와 자동차를 갈아타고 강원도의 작은 마을로 향했다. 눈 덮인 산 아래에 서른 가구 남짓 모여 사는 곳이었다. 에리크는 낡은 기와집과 비닐하우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도 고속 인터넷이 들어옵니까?"

    마을회관 안에는 컴퓨터 세 대가 놓여 있었다. 쪽진머리에 비녀를 꽂은 노인이 화면 앞에 앉아 농산물 판매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노인은 낯선 방문객들에게 귤과 차를 내놓았다.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셨다는데, 우리 마을 인터넷을 보러 왔다고요?"

    "예. 직접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내가 농사지은 감자를 여기 올리면 서울 사람들이 주문해요."

    노인은 능숙하게 사진을 열고 주문 목록을 확인했다.

    "예전에는 중간 상인이 주는 값대로 넘겼지요. 이제는 서울 시세도 보고, 주문도 직접 받아요. 우리 손자가 방법을 가르쳐 줬어요."

    에리크가 통역을 들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도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이런 속도를 쓰려면 훨씬 많은 비용을 냅니다."

    나는 마을회관 창밖의 전봇대를 바라보았다. 눈 쌓인 선로 아래에서 오철수 반장과 작업자들이 공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도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닙니다. 산이 많고 섬도 많습니다. 다만 정보의 길이 도시 사람만을 위한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리크는 가정집의 접속 속도를 확인한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솔직히 인정해야겠군요. 우리나라의 일부 대도시보다 이 산골 마을이 더 빠릅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해냈습니까?"

    준비해 둔 답변은 많았다. 정부의 장기 계획, 기업 간 경쟁,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교육열과 새로운 서비스에 민감한 소비자.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합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원도 자본도 부족했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국가 신용까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한 가지에 과감하게 걸었습니다. 사람을 연결하고, 지식을 빠르게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노인이 감자 상자를 묶으며 끼어들었다.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것이 들어오면 일단 배워요. 늦게 배우면 손해 보니까."

    통역이 끝나자 에리크가 크게 웃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정확한 설명인지도 모르겠군요."

    그 무렵 전자정부 사업도 국민의 일상을 바꾸고 있었다. 예전에는 주민등록등본 한 장을 발급받으려 해도 근무시간에 맞춰 관공서를 찾아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세금 신고와 각종 인허가에는 수많은 종이와 도장이 필요했다.

    처음 온라인 민원 서비스를 확대하자는 회의에서는 반대가 거셌다.

    "연세 많은 분들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기존 창구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하나 더 만들자는 겁니다."

    "개인정보가 새면 누가 책임집니까?"

    "보안과 인증 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합니다. 편리함을 위해 안전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위험이 두렵다고 발전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시행 초기에는 문제가 적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멈추고, 접속자가 몰려 화면이 열리지 않기도 했다. 한 번은 시스템 장애가 발생해 민원 전화가 폭주했다.

    "인터넷으로 하면 빠르다더니 종이로 할 때보다 더 오래 걸리잖아요!"

    "죄송합니다. 현재 복구 중입니다."

    "컴퓨터가 사람보다 낫다더니 이게 뭐요?"

    전화를 내려놓은 직원들의 얼굴은 지쳐 있었다. 누군가는 차라리 예전 방식이 낫다고 불평했다.

    나는 장애 상황실에서 밤을 새우는 기술자들을 찾아갔다. 젊은 개발자 이준호는 사흘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얼굴이었다.

    "언제 복구됩니까?"

    "곧 됩니다. 원인은 찾았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고치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하나씩 확인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왜 빨리 못 고치느냐고 난리입니다."

    "압니다. 제 어머니도 전화해서 욕하시더군요."

    "어머니께서요?"

    "오늘 등본을 발급받으려다가 실패하셨대요. 제가 이 시스템을 만든 줄도 모르고, 만든 사람은 정신 차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피곤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흘렀다. 준호는 다시 화면으로 몸을 돌렸다.

    "욕을 먹어도 고쳐야죠. 사람들이 화를 낸다는 건 이제 이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니까요."

    새벽 무렵 시스템이 다시 열렸다. 첫 온라인 민원서류가 정상적으로 발급되자 상황실에서 작은 박수가 터졌다. 화려한 축포도, 기념사진도 없었다. 기술자들은 컵라면 국물을 마시고 다시 오류 기록을 살폈다.

    전자정부는 그렇게 완성되어 갔다. 한 번의 거대한 발명이 아니라, 수많은 불편과 오류를 고치고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세금 신고와 조달, 민원 신청과 각종 행정 정보가 전산망 위에서 움직였다. 행정 처리 과정이 기록되면서 부정과 특혜가 끼어들 틈도 줄어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서 서류를 출력하며 말했다.

    "예전에는 이거 하나 떼려고 반차를 냈다. 버스 타고 가서 줄 서고, 도장 빠졌다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

    "이제는 몇 분이면 되죠?"

    "편하기는 한데 종이가 기계에서 나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웃었다.

    "당신이 늙은 티를 내니까 그렇지. 나는 인터넷으로 기차표도 산다."

    아버지는 지지 않으려는 듯 마우스를 잡았다.

    "나도 할 줄 알아. 이건 내가 출력한 거야."

    부모님이 컴퓨터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국가 정보화라는 거대한 말은 결국 이런 장면을 위한 것이었다. 국민 한 사람의 시간을 돌려주고, 먼 길을 줄여 주며, 정보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대한민국의 전자정부와 정보통신 환경은 국제 평가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외국 대표단은 망 구축 방법뿐 아니라 행정 전산화와 국민 교육, 기업 경쟁 구조를 배우러 찾아왔다.

    그들을 배웅하던 날, 에리크가 내 손을 잡았다.

    "몇 년 전 우리는 한국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심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한국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됐군요."

    "저희도 아직 부족합니다."

    "그런 대답까지 빠르군요. 정상을 말하면서도 다음 문제를 먼저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차량이 떠난 뒤 나는 청사 앞에 오래 서 있었다. IMF 당시 외국 언론에 실렸던 문장이 떠올랐다.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는 차가운 평가였다.

    '아니다. 우리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의 성공을 한 사람의 보고서나 한 번의 정책 결정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연구자와 공무원, 기업과 기술자, 교사와 학생, 자영업자와 평범한 가정이 저마다 한 걸음씩 내디딘 결과였다.

    정부가 방향을 잡았고 기업은 경쟁했으며 국민은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요구했다. 느리면 느리다고 항의했고, 불편하면 고치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 까다로운 요구가 기업과 정부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보고서를 꺼냈다. 가장자리에는 젊은 날 손가락에서 묻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그 문장을 바라보는데 윤희가 새 보고서를 들고 들어왔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세계가 벌써 다음 세대 이동통신을 준비하고 있어요."

    "또 시작입니까?"

    "우리가 멈추면 다른 나라가 앞서갈 테니까요."

    나는 낡은 보고서를 서랍에 넣고 새 문서를 펼쳤다. 정상은 도착지가 아니었다. 먼저 오른 사람에게는 다음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미래를 기다리는 나라가 아니었다. 조금씩, 미래가 열릴 방향을 먼저 시험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었다.

    ※ 5: 단 한 시간의 승부

    세월은 전화선 모뎀의 잡음보다 빠르게 흘렀다. 검던 내 머리에도 흰빛이 섞이기 시작했다. 신입 사무관이던 나는 어느덧 후배들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느 봄날, 젊은 연구관 민재호가 두꺼운 자료를 들고 찾아왔다. 눈 밑에는 밤샘한 흔적이 선명했지만 표정은 들떠 있었다.

    "국장님, 다음 세대 이동통신 계획입니다."

    "다음 세대라니, 지금 속도도 충분히 빠르지 않나?"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기를 동시에 연결해야 합니다. 휴대전화뿐 아니라 자동차, 공장 설비, 의료기기까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옵니다."

    "이름은 정했나?"

    "5G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의 내가 떠올랐다. 낡은 컴퓨터 앞에서 정보의 고속도로를 상상하던 젊은 사무관. 눈앞의 재난조차 감당하기 벅찬데 십 년 뒤를 이야기했다가 회의실의 웃음거리가 됐던 그때 말이다.

    나는 자료의 첫 장을 천천히 넘겼다.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이 모두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에 따라 장비와 서비스, 기술 표준 경쟁에서도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세계 최초라는 간판만 따겠다고 서두르면 안 돼. 실제로 국민이 쓸 수 있는 망이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늦으면 우리가 만든 기술을 시험할 기회도, 세계 시장에 보여 줄 기회도 줄어듭니다."

    재호의 눈에서 젊은 날의 내 눈빛이 보였다. 나는 미소를 감추며 자료를 덮었다.

    "좋아. 다만 기억하게. 최초는 기자회견으로 만드는 게 아니야. 현장에서 실제 전파가 잡혀야 하지."

    5G를 향한 경쟁이 시작됐다. 정부와 통신사, 장비 제조사, 단말기 개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믿었지만 이해관계는 제각각이었다.

    "기지국을 더 설치하려면 비용 부담이 너무 큽니다."

    "단말기가 준비되지 않으면 망을 열어도 사용할 사람이 없습니다."

    "장비 시험 기간을 줄이면 품질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시간을 충분히 달라고만 하면 세계 최초는 다른 나라가 가져갑니다."

    회의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면 일정이 멈췄고, 너무 서두르면 안전성과 품질이 흔들렸다. 나는 책상 끝에 놓인 물컵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는지부터 다시 생각합시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간판 하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지금 멈추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미래 산업을 시험할 무대를 우리가 먼저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각자 책임을 나눠야 합니다. 정부는 제도와 주파수 문제를 풀고, 통신사는 망을 구축하며, 제조사는 장비와 단말기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통신사 관계자가 팔짱을 풀었다.

    "상용화 뒤에 장애가 발생하면 모든 비난은 통신사가 받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준비 과정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함께 고치고, 국민에게도 초기 서비스의 한계를 솔직히 알려야 합니다."

    "그래도 일정이 너무 빠릅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넉넉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 한마디에 오래된 기억들이 회의실을 스쳐 가는 듯했다. 외환위기의 겨울, 얼어붙은 땅을 파던 작업자들, 담배 연기 자욱한 PC방, 밤새 전자정부 시스템을 복구하던 개발자들. 대한민국의 디지털 역사는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린 뒤 출발한 적이 없었다. 달리면서 고쳤고, 넘어지면 더 빠르게 일어섰다.

    시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서는 속도가 잘 나오다가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신호가 약해졌다. 수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인 경기장에서는 접속이 흔들렸고, 기지국 장비의 프로그램이 예고 없이 멈추기도 했다.

    한겨울 밤, 현장 시험 중이던 재호에게 전화가 왔다.

    "국장님, 일부 구간에서 연결이 끊깁니다."

    "원인은?"

    "기지국 사이를 이동할 때 신호를 넘겨주는 과정이 불안정합니다. 제조사와 통신사가 함께 확인하고 있습니다."

    "현장 기온은?"

    "영하 십 도입니다."

    "사람들부터 교대시켜. 장비는 다시 만들 수 있어도 사람은 바꿀 수 없어."

    "현장에서는 오늘 끝까지 보겠답니다."

    나는 외투를 챙겨 입고 시험 장소로 향했다. 도로변 임시 천막 안에는 기술자들이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김이 오르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국장님이 여긴 왜 오셨습니까?"

    "책상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보는 게 낫겠지."

    한 여성 기술자가 차량을 타고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오갔다. 통화 상태와 데이터 전송 기록을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세 번째 실패가 나오자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조금 쉬었다 하죠."

    "괜찮습니다. 어디에서 끊기는지 이제 감이 왔어요."

    차량의 붉은 후미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마침내 끊김 없이 연결이 이어졌다. 천막 안에서 작은 환호가 터졌다. 그것은 세계가 알지 못할 승리였다. 그러나 세계 최초라는 기록은 그런 작은 승리 수천 개가 모여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었다.

    상용화 목표일이 다가오던 무렵, 해외 경쟁국도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무실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저쪽 발표가 예상보다 빨라졌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일정을 지키면 어떻게 되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통신사와 정부 관계자들이 다시 모였다. 달력과 시계를 번갈아 보며 가능한 시점을 계산했다.

    "단 몇 시간이라도 앞당겨야 합니다."

    "개통 절차를 갑자기 바꾸면 현장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준비된 가입자와 단말기가 있습니까?"

    "제한적이지만 가능합니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안전과 품질을 희생하는 변경입니까?"

    "아닙니다. 이미 준비된 범위에서 개통 시점만 조정하는 겁니다."

    "현장 책임자들이 감당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랜 침묵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대한민국은 준비된 절차를 앞당겨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통신사 상황실과 장비 회사, 정부의 연락망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개통 신호가 들어가던 밤, 대형 전광판에 연결 성공 표시가 하나씩 나타났다. 첫 통화와 첫 데이터 전송이 확인됐다.

    "연결됐습니다."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이어 두 번째와 세 번째 통신사에서도 성공 보고가 올라왔다.

    "상용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박수 소리가 터졌다. 어떤 사람은 의자에 주저앉았고, 어떤 사람은 옆 사람을 끌어안았다. 재호는 눈물을 참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떠들썩한 상황실 한쪽에서 눈을 감았다. 20여 년 전, 전화선 모뎀은 사진 한 장을 받는 데도 긴 시간을 요구했다. 이제 수천만 개의 기기가 보이지 않는 전파 속에서 연결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외신들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내 귀에는 화려한 보도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연결됐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는 수많은 기술자의 밤과 기업의 투자, 정책을 설계한 사람들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재호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국장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힘껏 잡았다.

    "아니야. 이제 시작한 거야."

    "세계 최초인데도요?"

    "최초는 문을 먼저 연 것뿐이네. 그 문 너머에 무엇을 만들지는 지금부터 결정해야 하지."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도시 위를 흐르는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미래를 따라잡기 위해 뛰는 나라에서, 미래의 첫 장면을 시험하는 나라로 바뀌고 있었다.

    ※ 6: 보이지 않는 길 위의 한류

    5G 상용화의 흥분이 가라앉을 무렵,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우리가 만든 길의 의미를 확인하게 됐다.

    주말 오후, 손자 민우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무선 이어폰을 빼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냐?"

    "한국 가수 신곡이 올라왔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보고 있어요."

    화면에는 화려한 음악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댓글은 한국어만이 아니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아랍어, 일본어를 비롯해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문자들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냐?"

    "미국도 있고 유럽도 있고 남미도 있대요. 지금 같이 보고 있다니까요."

    화면 아래 조회 수는 믿기 어려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천 단위와 만 단위를 지나 어느새 수백만을 향해 움직였다.

    "방송국에서 전 세계로 내보내는 거냐?"

    "아니요. 인터넷에 올린 거예요. 팬들이 알아서 퍼뜨리고 자막도 만들어요."

    민우는 마치 당연한 일처럼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과거 우리 가수들이 외국 무대에 서려면 현지 방송사와 음반 유통사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드라마가 해외에서 방영되려면 방송권 계약과 편성표를 통과해야 했다.

    이제 작은 제작사나 개인 창작자도 영상을 올리는 순간 세계의 시청자를 만날 수 있었다. 국경을 건너는 데 배나 비행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깐 길 위를 음악과 이야기, 사람의 마음이 달리고 있구나.'

    며칠 뒤, 나는 정부와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간담회에 참석했다. 젊은 영상 제작자 서하진이 말했다.

    "우리의 성공이 빠른 인터넷 하나 덕분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콘텐츠는 결국 창작자의 땀으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반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속도로 세계의 반응을 확인하고 작품을 고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온라인 게시판과 동영상, 실시간 대화에 익숙했습니다. 시청자가 무엇에 웃고 어디에서 지루해하는지 빠르게 알아챕니다."

    옆에 있던 음악 기획자가 말을 이었다.

    "해외 팬들은 가사를 번역하고, 춤을 따라 하며, 자기들끼리 홍보합니다. 예전에는 회사가 돈을 들여 광고를 했지만 지금은 팬들이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나는 오래전 PC방에서 만난 중학생을 떠올렸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 게시판에서 찾아보면 된다고 말하던 아이. 그 세대가 자라서 음악과 영화, 게임과 웹툰을 만들고 있었다.

    PC방은 단순히 게임을 하던 장소가 아니었다. 서로 연결된 사람들이 정보를 찾고 협력하며,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운 실전 훈련장이었다. 인터넷 동호회와 온라인 게시판은 새로운 공동체를 낳았다. 빠른 연결을 일상으로 받아들인 국민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만들고 나눴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실패도 많았다. 나는 하진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지하에 자리 잡은 작은 공간에는 편집용 컴퓨터와 접이식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를 찾는다는데 작업실은 생각보다 소박하군요."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더 작았습니다. 첫 작품은 조회 수가 백 번도 안 나왔어요."

    "그런데도 계속했습니까?"

    "댓글이 하나 달렸거든요. 외국에 사는 교포 할머니가 고향 생각이 났다고 했어요."

    하진이 오래된 댓글을 화면에 띄웠다.

    "한 사람에게라도 닿았다면 다음 것도 만들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작품에는 해외 시청자가 자막을 붙여 줬고, 세 번째부터 반응이 커졌습니다."

    "빠른 인터넷이 창작자를 성공하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군요."

    "그렇죠. 다만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비용을 줄여 줬습니다. 방송국에 선택받지 못해도 작품을 보여 줄 수 있고, 반응이 없으면 고쳐서 다시 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이야말로 디지털 인프라의 진짜 힘이었다. 길은 목적지를 정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든 출발할 기회를 제공하고, 실패한 사람이 다시 달릴 수 있게 한다.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영화, 게임, 웹툰이 국경을 넘어갔다. 어떤 작품은 전 세계 순위에 올랐고, 한국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영예를 받았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드라마에 등장한 음식을 찾아 먹었다.

    어느 날 외국의 문화 담당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정부가 처음부터 K-컬처의 세계적 성공을 예상하고 통신망을 구축한 겁니까?"

    "그랬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럼 우연이었습니까?"

    "완전한 우연도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의 모든 쓰임새를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연결되면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부의 계획과 국민의 창의성이 결합했다는 뜻입니까?"

    "정부는 길을 깔 수 있습니다. 기업은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지요. 하지만 어디로 달릴지 결정하는 건 국민입니다. K-컬처는 그 길 위에서 국민이 스스로 찾아낸 목적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자는 한참 동안 메모한 뒤 다시 물었다.

    "한국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유행을 만들고 퍼뜨립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국민은 느린 것을 잘 참지 못합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하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순식간에 나눕니다. 예전에는 그 성격이 조급하다고 평가받기도 했지요. 디지털 시대에는 그것이 빠른 실험과 확산의 힘이 됐습니다."

    물론 인터넷은 밝은 면만 가진 세상이 아니었다. 거짓 정보와 악성 댓글이 퍼졌고, 디지털 격차와 과도한 경쟁도 문제가 됐다. 빠르게 연결된 만큼 상처도 빠르게 번졌다.

    나는 민우가 악성 댓글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사람들은 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심한 말을 해요?"

    "길이 넓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바른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란다."

    "그럼 인터넷은 나쁜 거예요?"

    "아니. 길 위에서 사고가 난다고 길을 없앨 수는 없지. 규칙을 만들고, 서로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디지털 강국이라는 이름은 속도만 빠르다는 뜻이어서는 안 됐다. 기술을 사람답게 사용하는 문화, 뒤처진 사람을 기다리는 배려,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제도가 함께 자라야 했다.

    어느 저녁, 민우는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한국 노래를 함께 불렀다. 화면 속 아이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박자에 맞춰 웃었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1997년 겨울, 우리가 상상한 것은 문서와 산업 정보가 오가는 고속도로였다. 그 길 위로 노래와 영화, 웃음과 눈물이 달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엔진이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파던 작업자의 손, 밤새 오류를 고친 개발자의 눈, 작은 지하 작업실에서 포기하지 않은 창작자의 땀.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세계와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은 국민의 열정.

    그 모든 힘이 모여 대한민국의 이야기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 7: 폐허에서 미래로

    은퇴를 한 달 앞둔 날, 나는 오래된 사무실 서랍을 정리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문서와 명함, 빛바랜 사진들이 먼지 냄새와 함께 쏟아졌다.

    가장 아래에서는 낡은 보고서 한 부가 나왔다. 종이 가장자리는 누렇게 변했고, 스테이플러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첫 장 한쪽에는 오래전 손가락을 베며 묻힌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그 문장을 손으로 쓰다듬는데 문이 열렸다. 이제는 간부가 된 민재호가 젊은 사무관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국장님, 송별회 전에 후배들이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답니다."

    "송별회에서 술이나 따라 주면 되지, 뭘 또 묻겠다는 건가?"

    한 사무관이 수첩을 펼쳤다.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에 한마디로 답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해."

    후배들이 웃었다.

    "정부의 결단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통신사들의 경쟁과 투자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아파트가 많아서 망을 효율적으로 깔 수 있었다는 분석도 맞아. 교육열과 빠른 문화, PC방과 온라인 게임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고."

    "그중 하나만 고르신다면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청사 앞 거리를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영상을 보고 물건을 주문했다. 한때 특별했던 연결이 이제는 공기처럼 일상이 되어 있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미래를 선택한 용기라고 말하고 싶군."

    "외환위기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라가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 산업에 투자하자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네."

    나는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눈 덮인 공사 현장에서 오철수 반장과 찍은 사진이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땅을 파고 통신 선로를 깔던 현장 책임자였네. 손을 다치고도 자기 손주에게 저 길을 할아버지가 깔았다고 말하고 싶다더군."

    다른 사진에는 PC방 주인 김상호가 서 있었다. 회사에서 쫓겨난 뒤 작은 가게를 열고,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디지털 교실을 만든 사람이었다. 전자정부 장애를 고치느라 밤을 새운 개발자와 5G 시험 차량을 타고 겨울 도로를 오간 기술자들의 사진도 있었다.

    "역사는 장관이나 국장의 이름으로만 기록되기 쉽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저 사람들의 손으로 움직였어. 국민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떤 기술도 살아남지 못했을 테고."

    한 후배가 낡은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이 보고서에서 모든 게 시작됐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당시 수많은 부처와 연구기관, 기업이 이미 정보화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었어. 이건 그 흐름에 보탠 작은 목소리였을 뿐이네."

    "그래도 첫 문장이 인상적입니다."

    "젊을 때는 내가 미래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지. 지금은 생각이 달라. 미래는 한 사람이 발견하는 게 아니야.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작은 불빛을 들고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의 모양이 드러나는 거지."

    퇴임식 날, 나는 긴 연설 대신 짧은 인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단상에 서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명예퇴직 서류 앞에서 소주잔을 들던 아버지, 결혼반지를 내놓으며 나라가 살아야 한다던 어머니. 목이 잠겨 준비한 원고를 잠시 내려놓았다.

    "저는 1997년 겨울,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그러나 국민은 장롱 속 금을 꺼냈고, 기술자는 얼어붙은 땅을 팠으며,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했습니다. 학생들은 골목의 PC방에서 새로운 세상을 배웠고, 개발자들은 밤새 시스템을 고쳤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먼 미래를 향해 걸었습니다."

    나는 후배들이 앉은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얻은 세계 최초와 세계 최고라는 기록은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기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더 빠른 기술은 반드시 나오고, 다른 나라도 우리를 앞설 것입니다. 진짜 자산은 1위라는 숫자가 아니라 변화 앞에서 다시 배우고 도전하는 국민의 힘입니다."

    퇴임식을 마친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니 민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제 진짜 회사 안 가요?"

    "그래. 내일부터는 늦잠도 자고 네 할머니 눈치도 봐야지."

    "그럼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나라가 망할 뻔했다는 이야기요."

    "그게 옛날이야기로 들리느냐?"

    "인터넷도 느리고 스마트폰도 없었다면서요. 상상이 안 가요."

    나는 서랍에서 모뎀 하나를 꺼냈다. 오래전 기념으로 보관해 둔 물건이었다.

    "이걸 전화선에 연결하면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단다. 사진 한 장을 받으려 해도 한참 기다려야 했어."

    "그렇게 느린 걸 어떻게 썼어요?"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이었지."

    민우는 모뎀을 신기한 유물처럼 돌려보았다.

    "할아버지가 인터넷을 만든 거예요?"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었지. 할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으로 조금 거들었을 뿐이야."

    "그럼 앞으로는 뭘 만들어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서울의 밤은 수천만 개의 불빛으로 반짝였다. 자동차와 건물, 사람의 손에 들린 기기들이 보이지 않는 데이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네가 찾아야지."

    "제가요?"

    "우리 세대는 빠른 길을 깔았어. 하지만 그 길을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건 너희 세대의 일이란다. 사람을 감시하거나 미워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살리고 외로운 사람을 이어 주는 기술을 만들어야 해."

    "저는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싶어요."

    "좋지. 다만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은 더 지혜로워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먼저 물어야 해."

    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나라가 또 어려워져도 우리가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잠시 답하지 않았다. 무조건 잘될 거라는 말은 책임 없는 위로가 될 수 있었다. 역사는 늘 성공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기술의 변화는 일자리를 흔들고, 새로운 격차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금가락지를 내놓던 어머니와 다시 마우스를 배운 아버지, 추위 속에서 선을 끌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왜요?"

    "우리는 이미 한 번 해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오래된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새 문장 하나를 적었다.

    위기는 저절로 기회가 되지 않는다. 미래를 선택하고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기회가 된다.

    1997년 겨울의 대한민국은 폐허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을 바라보는 대신 보이지 않는 길을 깔았다. 정부의 결단과 기업의 경쟁, 기술자의 땀과 국민의 열망이 만났다. 그 길은 초고속 인터넷과 전자정부를 만들고, 세계 최초 5G와 K-컬처가 달릴 무대가 됐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진짜 힘은 전파나 광케이블 안에만 있지 않았다.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하면 다시 고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함께 움직인 사람들에게 있었다.

    나는 보고서를 덮고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도 도시의 수많은 창문은 빛나고 있었다. 그 불빛 사이로 보이지 않는 정보가 강물처럼 흘렀다.

    폐허에서 정상까지.

    그리고 정상에서 다시 미래로.

    대한민국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튜브 엔딩 멘트

    세계가 대한민국의 기적은 끝났다고 말하던 순간, 우리는 오히려 미래의 길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기록 뒤에는 이름 없이 땅을 파고, 밤을 새우고, 새로운 기술을 배운 국민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을 함께 준비하는 용기입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해 주세요.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한글

    1997년 외환위기의 어두운 서울과 현대의 눈부신 디지털 서울이 하나의 화면에서 대비되는 장면, 화면 왼쪽에는 낡은 양복을 입고 퇴직 서류를 든 아버지와 금가락지를 내놓는 어머니, 얼어붙은 땅에 광케이블을 묻는 한국인 기술자들, 중앙에는 젊은 한국인 공무원이 빛나는 보고서를 들고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 오른쪽에는 초고속 인터넷망과 스마트폰, 5G 전파, 전자정부, PC방, K-팝 공연과 한국 드라마를 세계인이 시청하는 상징적 풍경, 태극 문양을 연상시키는 붉고 푸른 빛의 흐름,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환되는 감동적이고 웅장한 분위기, 한국인 중심의 사실적인 인물 표현, 섬세한 수채화, 영화적 조명, 16:9, 텍스트 없음, 글자 없음, 로고 없음

    English

    A dramatic split-era panorama contrasting the dark streets of Seoul during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with the brilliant digital skyline of modern South Korea; on the left, a Korean father in a worn business suit holding a retirement notice, a Korean mother donating her gold ring, and Korean technicians laying fiber-optic cables in frozen ground; at the center, a young Korean civil servant holding a glowing policy report and looking toward the future; on the right, symbolic scenes of ultra-fast broadband, smartphones, 5G signals, e-government, PC cafés, a K-pop performance, and global audiences watching Korean dramas; flowing red and blue light inspired by the Taegeuk symbol, an emotional and majestic transition from despair to hope, realistic Korean characters, detailed watercolor painting, cinematic lighting, 16:9, no text, no letters, no logo.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