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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에서 난리난 ‘ㄱ자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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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미국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정원 박람회. 사람들은 내 부스에 놓인 기역 자 모양의 시커먼 쇳조각을 보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유명 정원 유튜버는 그것을 장난감이라 조롱하며 천만 조회수의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한국의 쇳조각이, 곧 미국 전역의 정원사들을 무릎 꿇게 만들 마법의 도구라는 사실을.
※ 1: 미국 정원 박람회에서 비웃음당한 날
저 멀리서부터 윙윙거리는 잔디깎이 기계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고, 캘리포니아 특유의 맑은 새소리가 따가운 햇살 위로 부서져 내렸다. 내 앞에는 중고로 산 낡은 접이식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할머니가 한국에서 정성스레 포장해 보내주신 호미 스무 자루가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외곽에서 ‘백야드 서울’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작은 온라인 정원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허름한 창고 한 칸과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중고 노트북 하나가 내 사업의 전부였다.
이곳 미국 정원사들의 장비는 화려했다. 그들은 삽, 갈퀴, 모종삽, 제초칼을 각각 따로 허리춤에 차거나 커다란 장비통에 끌고 다녔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복잡하고 무거운 도구들이 하는 모든 일을 단 한 번에, 그것도 아주 우아하게 해내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기역 자로 날렵하게 휘어진 시커먼 쇠스랑,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척 보면 아는 호미였다. 나는 지역 정원 박람회 한쪽에 겨우 작은 부스를 얻어 호미를 올려놓았다. 상품명은 알리익스프레스의 검색어에 맞춰 어설프게 번역한 팻말을 세워두었다. Korean G-Shape Iron Hoe.
사람들은 내 부스를 지나가며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 투박한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이내 헛웃음으로 바뀌기 일쑤였다.
"이거 쓰다 망가진 갈고리 아냐?"
"손잡이만 나무로 된 어린이 장난감 같은데? 우리 집 꼬마 모래놀이할 때 주면 딱 맞겠군."
그때였다. 미국 정원 방송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 정원사, 브래드 콜먼이 내 부스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는 한 손에 수백 달러가 족히 넘는 매끄러운 탄소섬유 삽을 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촬영팀이 바짝 붙어 있었다. 브래드는 테이블 위에 놓인 호미 하나를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 들더니 카메라 렌즈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여러분, 오늘은 인터넷에서 굴러온 아주 기가 막히게 이상한 쇳조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름이 K-뭐라고요? 호미?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이걸로 코끼리 등이라도 긁어주나 봅니다!"
순간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내 얼굴은 화로에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나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등 뒤에 감춘 손으로 남은 호미의 나무 손잡이를 꽉 쥐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나무의 촉감이 손바닥에 닿자, 어릴 적 외할머니가 땡볕 내리쬐는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툭툭 던지시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흙은 절대 거짓말 안 한다. 입으로 떠드는 놈 말고, 누가 진짜 땀 흘려 일하는지 저 밑에 있는 흙이 제일 먼저 아는 법이여.'
그날 밤, 좁은 창고 겸 숙소로 돌아온 나는 차마 불을 끄지 못했다. 브래드가 올린 박람회 조롱 영상은 반나절 만에 조회수 백만을 훌쩍 넘겨버렸다. 영상 아래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산 미니 갈고리,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온 가장 괴상한 고철 덩어리. 화면을 스크롤 할 때마다 날카로운 조롱들이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상자에서 호미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바싹 마른 화분의 흙을 천천히 긁어내렸다.
서걱, 서거걱.
예리한 쇠끝이 딱딱하게 굳은 흙을 단숨에 파고드는 소리가 좁은 방안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너무나도 경쾌하고 단단한 그 소리에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좋아. 마음껏 비웃고 웃어라. 하지만 곧, 너희들의 그 오만한 정원에서 바로 이 소리가 메아리치게 될 테니까.'
※ 2: 호미가 흙을 만나는 순간
다음 날 아침, 밤새 뒤척이던 나는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동네에 있는 커뮤니티 가든으로 향했다. 박람회에서 수천 명에게 망신당한 그 끔찍한 영상을 머릿속에서 박박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오른손에는 어제 박람회에 전시했던 새 제품이 아니라, 할머니가 한국의 밭에서 수십 년간 쓰시던 낡은 호미가 쥐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손길을 탄 나무 손잡이는 기름을 먹인 듯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고, 수없이 돌과 흙을 만나며 마모된 쇠끝은 정성껏 벼려낸 명검의 날처럼 매끄러웠다.
정원 입구 쪽에는 평소 안면이 있던 조경사 마야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오른쪽 손목에는 두꺼운 보호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마야는 며칠 내린 비와 뜨거운 햇볕 때문에 정체불명의 잡초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텃밭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곳의 흙은 돌처럼 딱딱하게 뭉쳐 있었고, 징그러운 메꽃 뿌리는 땅속 깊은 곳까지 악착같이 뻗어 있었다. 마야는 수십 달러짜리 번쩍이는 제초칼을 꺼내 흙을 푹푹 찔렀지만, 칼끝은 번번이 미끄러졌고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손목을 연신 흔들어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등 뒤에서 말을 건넸다.
"그거, 한 번 써볼래요?"
마야는 고개를 돌려 내 손에 들린 낡은 호미를 보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아, 어제 그 인터넷에서 하루 종일 조롱당하던 그 물건? 미안하지만 내 손목이 지금 장난을 칠 여유가 없네요."
나는 긴 대답 대신 묵묵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호미의 뾰족한 끝을 성가신 잡초 바로 옆, 딱딱한 흙바닥에 비스듬한 각도로 꽂아 넣었다. 손목에 큰 힘을 주지 않고 몸통의 반동을 이용해 가볍게 몸쪽으로 당겼다.
쩌억.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바위 같던 흙이 단숨에 두 갈래로 갈라지며, 땅속 깊이 숨어 있던 하얀 잡초 뿌리가 통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호미의 넓은 옆면으로 흙을 툭툭 긁어내자 주먹만 한 흙덩이들이 고운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세 번째로 손목을 틀어 흙을 모으자 눈 깜짝할 사이에 씨앗을 심기 좋은 작은 고랑 하나가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찌르고, 당기고, 긁고, 모으고, 흙을 북돋는 그 모든 복잡한 과정이 도구를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채 내 한 손에서 물 흐르듯 이어졌다. 옆에서 멍하니 그 과정을 지켜보던 마야의 눈빛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방금 도대체 도구 몇 개의 역할을 그 하나로 다 한 거예요?"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호미를 건네받았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각도 탓에 어정쩡하게 팔을 허공에 휘적거리더니, 이내 내가 했던 것처럼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지독하던 잡초들은 잔뿌리 하나 남지 않고 통째로 뽑혀 나갔고, 울퉁불퉁하던 화단은 정갈하게 빗질을 한 것처럼 가지런해졌다. 무엇보다 무거운 도구를 여러 번 내려찍지 않아 그녀의 손목에 가는 무리가 훨씬 덜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흙투성이가 된 채 활짝 웃고 있는 그녀와 완벽해진 화단을 번갈아 가며 촬영했다. 영상의 제목은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K-Homi Challenge: 단 10분 만에 죽은 화단 살려내기.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고 맞이한 그날 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화면의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조회수 천, 만, 십만을 넘어 끝없이 올라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롱으로 가득했던 댓글 창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저거 당장 어디서 사요? 제발 알리익스프레스 링크 좀 주세요!
세상에, 도구 하나로 다 해결되잖아? 이거야말로 우리 정원사들이 평생 찾던 꿈의 도구 아닌가요!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할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호미는 백 번의 화려한 설명보다, 그저 흙 위에서 직접 뒹굴 때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스스로를 증명해 내고 있었다.
씬 3. 비웃음이 주문 폭주로 바뀌다
마야의 10분 화단 복구 영상이 말 그대로 '터진' 직후, 내 휴대폰은 숨통이 끊어질 듯 쉴 새 없이 알림음을 토해냈다. 띠링, 띠링, 띠링. 알리익스프레스와 내 개인 쇼핑몰 판매 페이지에는 K-Homi, Korean ㄱ-Shape Garden Hoe, 그리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인 호미라는 검색어가 실시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엔 신기한 마음에 한두 개씩 들어오던 장난 같던 주문이, 불과 하루 만에 내가 가진 작은 창고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폭발적인 숫자로 변해버렸다.
오리건주에 있는 대규모 장미 농장주부터, 텍사스의 뙤약볕 아래서 선인장을 가꾸는 정원사, 심지어 흙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뉴욕 브루클린의 옥상 텃밭 동호회장까지 전국 각지에서 이메일과 메시지가 날아왔다.
사진으로 보기엔 아주 작아 보이는데, 진짜 강한 도구 맞나요?
우리 동네 흙은 돌덩이처럼 딱딱한데 거기서도 쓸 수 있을까요?
한국의 나이 든 할머니들이 정말 이 도구 하나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사실입니까?
나는 밤을 꼬박 새우며 충혈된 눈으로 답장을 써 내려갔다.
네, 정말로 씁니다. 아주 강하고 튼튼합니다. 그리고 직접 써보시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잘 됩니다.
하지만 열광적인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예상치 못한 거센 반격도 시작되었다. 나를 조롱했던 스타 정원사 브래드 콜먼이 분노에 찬 새 영상을 올린 것이다. 그는 내 10분 챌린지 영상을 느린 배속으로 하나하나 멈춰가며 분석하듯 말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저건 그저 운이 좋아서 물렁한 흙을 만났을 뿐입니다. 진짜 험난한 전문 정원 작업에서는 저런 얄팍한 쇳조각은 단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겁니다.
그리고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오만방자한 공개 도전을 던졌다. 다음 주에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최대 가든 엑스포 메인 무대에서, 똑같은 조건의 화단을 두고 10분 안에 누가 더 완벽하게 복구하는지 대결을 하자는 것이었다. 조건은 자신은 최신식 첨단 도구 다섯 개를 자유롭게 쓰고, 나는 오직 그 허접한 호미 단 하나만 쓰라는 아주 불공평한 내용이었다.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댓글 창은 전쟁터로 변했다.
K-호미가 이기면 이건 진짜 원예계의 혁명이다!
무슨 소리야, 브래드의 장비가 얼만데. 저 한국 쇳조각은 시작하자마자 박살 날걸?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당장 창고를 털어도 남은 호미 재고는 거의 바닥난 상태였고, 한국의 전통 대장간에 긴급히 요청해 둔 새 호미 물량은 태평양 위에서 배송 지연을 겪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터넷 쇼핑몰에는 가짜 제품들까지 독버섯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겉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내고 싸구려 철판을 대충 구부려 만든 조악한 복제품들이 K-Homi Pro라는 뻔뻔한 이름을 달고 반값에 팔리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에 나는 결국 새벽에 한국에 계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할머니는 수화기 너머로 한참을 껄껄 웃으시더니 아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호미는 뻣뻣하게 서서 팔 힘으로 휘두르는 물건이 아니여. 흙하고 네 눈높이를 똑같이 맞춰야 혀. 네가 먼저 무릎을 꿇고 낮아지면, 흙이 스스로 스르륵 마음을 여는 거여. 겁먹지 말어라.
나는 할머니의 그 투박한 목소리를 녹음해 두고 불안감이 밀려올 때마다 귀에 꽂고 반복해서 들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자 나는 브래드의 영상에 짧지만 단호한 답글을 달았다.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대결 내내 그 도구의 이름은 기역 자 쇳조각이 아니라, 정확히 호미라고 불러주십시오.
그 순간부터 이 대결은 단순히 물건을 하나 더 팔기 위한 가벼운 마케팅 경쟁이 아니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조롱당한,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 도구의 진짜 이름을 되찾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4: 10분 대결, 흙이 판정을 내리다
라스베이거스 가든 엑스포의 메인 무대는 내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고 압도적이었다. 돔 형태의 화려한 조명 아래, 관객석에는 카메라를 든 정원 유튜버, 팔짱을 낀 깐깐한 조경업자, 거대한 농장주들, 그리고 소문을 듣고 몰려온 전국의 홈가드닝 동호인들이 입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똑같이 처참하게 망가진 대형 화단 두 개가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다. 주최 측은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흙에 일부러 끈적한 물을 잔뜩 뿌려 진흙탕처럼 만들어 놓았고, 그 위로는 성인 무릎 높이까지 자란 억센 잡초들과 엉킬 대로 엉킨 칡뿌리, 그리고 비바람에 쓰러져 꺾이기 일보 직전인 가여운 허브 모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무대 오른쪽에서 브래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다. 그의 허리에는 번쩍이는 최고급 가죽 도구 벨트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티타늄으로 코팅된 삽,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갈퀴, 레이저로 연마했다는 제초칼, 모종삽, 그리고 흙고르개를 과시하듯 하나씩 허공에 높이 들어 보였다.
나는 반대편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그저 손에 익은 낡은 호미 단 하나만을 움켜쥐고 조용히 무대 위로 올랐다. 관객석 구석에서 킥킥거리는 얕은 웃음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진행자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날카로운 시작 신호가 울려 퍼졌다.
브래드는 맹수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엔 그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는 듯했다. 큼직한 삽으로 질척이는 흙을 푹푹 떠내고, 갈퀴를 휘둘러 표면을 긁어낸 뒤, 제초칼을 뽑아 들어 굵은 뿌리들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하지만 그 요란한 과정 속에서 치명적인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에 맞춰 도구를 넣고 뺄 때마다 귀중한 초 단위의 시간이 허비되었고, 젖어서 무거워진 진흙은 삽날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급하게 제초칼로 끊어낸 잡초들은 가장 중요한 땅속 깊은 곳의 생장점을 남겨둔 채 허리만 동강 나버렸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할머니의 말씀대로 화단 턱에 바싹 붙어 무릎을 완전히 낮췄다. 흙과 눈높이를 맞춘 순간,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할지 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호미의 날카로운 끝을 엉킨 뿌리 밑동을 향해 흙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끝에 툭, 하고 가장 질긴 메인 뿌리가 닿는 감각이 전해졌다. 그 순간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손목을 가볍게 뒤로 당기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질긴 잡초 덩어리가 진흙을 털어내며 통째로 뿌리 뽑혀 올라왔다.
기역 자로 꺾인 날렵한 날은 진흙 속을 유영하듯 파고들었다가, 질척이는 흙을 넓은 면으로 시원하게 긁어내고, 흩어진 흙들을 다시 부드럽게 한가운데로 모아주는 하나의 완벽한 춤사위로 이어졌다. 나는 어릴 적 평상에 누워 듣던, 할머니가 밭에서 일하실 때 내던 흙의 박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찌르고, 당기고, 툭툭 털어내고, 다시 북돋고.
시간이 절반쯤 지나자, 무대를 채우던 관객석의 비웃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와 "오오…" 하는 나지막하고 깊은 탄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깔끔하게 뿌리째 뽑아낸 잡초들을 무대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두고, 물에 젖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던 진흙을 호미의 넓적한 등으로 모아 쓰러진 허브 모종 주변으로 둥글고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
종료를 알리는 1분 전 알람이 울렸다. 브래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뻘뻘 땀을 흘리며 진흙이 잔뜩 묻은 장갑을 벗어던지고 도구를 교체하느라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무릎을 펴고 일어나, 호미의 둥근 등으로 흙 표면을 쓰다듬듯 살짝 고른 뒤 손가락으로 쓰러져 있던 허브의 작은 잎사귀들을 정성껏 세워주었다.
이윽고 찢어질 듯한 종료 벨이 전시장에 울려 퍼졌다.
내 앞에 놓인 화단은 비록 작았지만, 방금 전까지 폐허였던 곳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정갈한 텃밭의 모습을 되찾아 있었다. 반면 브래드의 화단은 겉보기엔 넓게 파헤쳐져 그럴싸해 보였지만, 곳곳에 끊어진 굵은 뿌리들이 흉측하게 남아 있었고 파낸 흙들은 정돈되지 못한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엑스포 주최 측에서 초빙한 노년의 마스터 정원사가 판정단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는 두 화단을 말없이 꼼꼼하게 살피더니, 내 화단 앞에 멈춰 서서 테이블 위에 놓인 흙 묻은 호미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이크를 향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이것은 인터넷에서 떠들던 장난감이 아닙니다. 이것은 흙을 이해하고, 생명을 다룰 줄 아는 진짜 일하는 사람을 위한 가장 완벽한 도구입니다. 이 승부는 더 볼 것도 없습니다."
그 순간, 돔 구장이 떠나갈 듯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무대를 덮쳤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행자가 건넨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수백 명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떼며 힘주어 말했다.
"이 도구의 이름은 호미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불러왔습니다."
※ 5: 이름을 지우자는 제안
라스베이거스의 10분 대결이 끝난 이후, 내 삶의 모든 궤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버렸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담은 짤막한 영상은 미국 전역의 정원 커뮤니티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며칠 뒤에는 유력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해외 토픽 클립으로까지 방영되었다. 뉴스 앵커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작고 투박한 한국의 전통 도구가 오만한 미국 정원계를 뒤흔들었다"며 연일 방송을 내보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내 쇼핑몰에 남아있던 약간의 재고는 방송이 나간 지 단 한 시간 만에 전부 품절되었고, 인터뷰 요청과 도매 문의 이메일이 하루에도 수백 통씩 쏟아져 들어와 이메일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연락 중에서 가장 기민하고 공격적으로 움직인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의 초대형 홈센터 유통회사였다. 그들은 곧바로 항공권을 보내며 나를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 펜트하우스 회의실로 호출했다. 대리석 바닥이 반짝이고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통유리 창문을 등진 채, 고급 정장을 빼입은 백발의 임원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가죽으로 된 두꺼운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미국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매장 메인 진열대 입점, 상상을 초월하는 단위의 선주문 물량 보장, 그리고 막대한 모델료가 포함된 독점 광고 계약까지.
"이 계약서에 서명만 하시면, 당신은 내일부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겁니다. 모든 물류와 마케팅은 우리 회사가 완벽하게 책임지겠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의식중에 마른침을 삼켰다. 계약서에 적힌 0의 개수를 세어보던 내 머릿속으로, 지난 몇 년간 창고 월세를 내지 못해 쩔쩔매던 서러운 밤들, 홀로 무거운 택배 박스를 나르다 허리를 다쳐 앓아누웠던 기억, 그리고 직원 한 명 고용할 돈이 없어 매일 밤눈물을 훔치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종이 쪼가리 하나에 내 이름을 적어 넣기만 하면,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고생은 영원히 끝나는 것이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금장 만년필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런데 임원이 만년필을 내 손에 쥐여주며 아주 가볍게, 지나가는 말투로 덧붙였다.
"아, 단 한 가지 사소한 수정 사항이 있습니다. 제품의 이름 말입니다. '호미'라는 단어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발음도 어렵고 억양도 낯섭니다. 게다가 너무 동양적인 느낌이 강해서 주류 시장에서는 거부감을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마케팅팀에서 훌륭한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리버티 클로(Liberty Claw)'. 자유의 갈고리. 어감도 훌륭하고 미국적인 가치에도 부합하죠. 제품 손잡이에 각인된 한글이나 한국색은 살짝 지우고, 세련된 무광 블랙으로 통일합시다. 어차피 소비자들은 성능을 사는 거니까, 이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년필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명란에 펜촉을 댄 채 숨을 고르던 그때, 테이블 위에 뒤집어놓았던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을 뒤집어보니 한국에서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 대장간의 최고령 사장님과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대장간은 섭씨 수천 도의 시뻘건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고, 쇳덩이를 내리치는 육중한 망치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꺼먼 숯검정이 잔뜩 묻은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던 사장님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미국에서 아주 난리가 났다고 들었시유. 근데 말이여, 우리가 쇠를 달구고 쳐서 맹글 때, 그 손잡이에 '호미'라고 도장을 콱 찍어 넣잖여. 그 이름이 지워지면 말이여, 이 뜨거운 불기둥 앞에서 평생 쇠를 두드려온 우리네 거친 손도 다 함께 지워지는 거여. 우리는 쇠를 파는 게 아니라 자존심을 파는 겨."
사장님 옆에 바짝 붙어 선 할머니는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더 짧고 명확하게 쐐기를 박으셨다.
"돈도 좋고 성공도 좋다마는, 호미가 호미로 불려야 진짜지.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남의 이름 훔쳐다 입혀놓으면 그건 가짜여. 흙은 가짜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법이다."
통화가 끊기고 난 후,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검은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서명란에 올려두었던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두꺼운 계약서를 덮어 임원 앞으로 조용히 밀어냈다.
"이 계약,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임원의 여유롭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겨우 그 발음하기 힘든 촌스러운 이름 하나 지키겠다고 이 엄청난 기회를 걷어차겠다는 겁니까? 감정적으로 굴지 마세요. 미국 소비자는 원산지의 역사나 만든 사람의 이름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오직 브랜드와 마케팅에 돈을 쓸 뿐이라고요!"
그의 분노 섞인 외침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며칠 동안 나를 짓누르던 엄청난 중압감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휴대폰을 들어 라이브 방송 앱을 켰다. 순식간에 수만 명의 팔로워가 접속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계약서의 로고를 카메라에 비춘 뒤, 담담하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방금 저는 미국의 가장 큰 유통회사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계약을 제안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도구의 진짜 이름을 지우고, '리버티 클로'라는 가짜 이름을 붙이자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팔고 싶은 것은 그저 잡초를 뽑는 쇳조각이 아닙니다. 이 작은 쇠스랑 안에는 수백 년 전부터 흙과 싸워온 한국 농부들의 거친 손맛이 있고, 척박한 밭을 일구던 땀방울의 기억이 있으며,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평생 쇠를 두드린 장인들의 진짜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짜는 진짜의 이름으로 불려야 합니다. 이것은 영원히 호미입니다."
방송을 종료하기도 전에, 화면 한쪽의 댓글 창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수십만 개의 하트가 쏟아졌고, 소셜 미디어 실시간 트렌드에는 #SayHomi, #KeepTheName, #KoreanHomi 라는 해시태그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평생 다시는 만져보지 못할지도 모를 천문학적인 돈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고급 호텔을 걸어 나왔다. 뉴욕의 차가운 빌딩 숲 사이를 홀로 걷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 6: 미국 정원사들이 ‘호미’를 배우다
초대형 계약을 거절하고 고집을 피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통회사의 임원이 경고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주문이 줄어들기는커녕 내 서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트래픽이 폭증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성능 좋은 정원 도구를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기업의 오만한 마케팅에 굴복하지 않은 작고 단단한 도구의 철학을 응원하고, 그 낯설고 투박한 이름을 자신의 정원에 기꺼이 들이고 싶어 했다. 쇼핑몰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이 뭔가요? 호-미? 허-미? 내 정원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발음을 알려주고 싶어요.
혹시 한국식으로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 담긴 튜토리얼 영상은 없나요?
우리 주(State) 연합 정원 클럽에서 다음 달에 K-Homi 오프라인 워크숍을 열고 싶은데 강사로 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밀려드는 요청을 감당하기 위해 급히 한국에 있는 크고 작은 전통 대장간들과 직통 연락망을 구축했다. 밤을 새워가며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싸구려 중국산 복제품 때문에 손을 다치는 소비자가 없도록 진짜 호미와 가짜 호미를 구별하는 상세한 안내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 속에서 나는 쇠가 휘어진 날의 황금 각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손잡이의 인체공학적 길이, 흙의 저항을 견뎌내는 탄소강의 탄성, 그리고 무엇보다 호미를 쥘 때 필수적인 쪼그려 앉는 자세, 일명 '아시안 스쿼트'에 대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설명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내가 사는 동네의 넓은 커뮤니티 가든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오프라인 '호미 데이'가 열렸다. 나를 믿어주었던 조경사 마야는 이제 내 가장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열혈 호미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미국 정원사들 앞에 서서 열정적으로 소리쳤다.
"여러분, 이 도구는 서부 개척 시대처럼 힘으로 땅을 찍어 누르고 파괴하는 폭력적인 물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흙의 결을 읽고, 식물의 뿌리를 존중하며, 땅과 대화하는 도구예요. 자, 모두 다 함께 무릎을 낮추세요!"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건장한 미국 정원사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끙끙거렸다. 어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호탕하게 웃었고, 어떤 사람은 값비싼 무릎 보호대를 차고 진지하게 흙바닥과 눈싸움을 했다. 하지만 정확히 30분이 지나자 밭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이들은 작은 꼬마 호미를 들고 상추 모종 주변의 흙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예쁘게 북돋았고,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노년의 정원사들은 굳어있던 손목과 어깨가 전혀 아프지 않다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 완벽한 도구를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지난 수십 년 동안 무거운 삽질을 하느라 망가진 내 허리가 억울할 지경이야!"
누군가 흙 묻은 땀방울을 훔치며 크게 외치자, 텃밭 여기저기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예상치 못한 인물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다. 그를 본 사람들이 홍해처럼 길을 비켜주었다. 한때 호미를 장난감이라 조롱했던 스타 정원사, 브래드 콜먼이었다. 그의 곁에는 평소 그를 졸졸 따라다니던 화려한 조명팀도, 수다스러운 촬영팀도 없었다. 화려하게 세팅했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옷차림도 낡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는 흙투성이가 된 채 쪼그려 앉아있는 내 앞까지 다가와 우뚝 섰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벗어 가슴에 얹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전통과 도구에 대해 너무나도 오만하고 무례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왁자지껄하던 텃밭 주변이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가 내 입만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바지춤의 흙을 툭툭 털어내고는, 바구니에서 새 호미 하나를 꺼내 그의 거칠고 커다란 손에 쥐여주었다.
"사과는 흙에게 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제 제대로 흙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볼까요? 먼저 이름부터 제대로 불러보시죠."
브래드는 뺨을 붉히며 손에 쥔 호미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주 크고 또렷하게, 어색하지만 진심을 다해 발음했다.
"호…미. 이 훌륭한 도구의 이름은 호미입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번에 쏟아진 웃음과 박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비하하는 조롱이 아니었다. 브래드는 긴 다리를 어색하게 접고 내 옆에 무릎을 낮추어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호미 끝으로 흙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각도를 잡지 못해 서툴게 헛손질을 했지만, 이내 날카로운 쇠끝이 흙의 결을 파고드는 감각을 깨닫고는 기막힌 솜씨로 잡초 뿌리 하나를 통째로 부드럽게 뽑아 올렸다.
잡초가 뽑혀 나오는 경쾌한 소리에 나는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할머니, 보셨죠? 결국 가르친 건 제가 아니라, 할머니가 평생 만지시던 저 정직한 흙이었어요.'
그날 저녁, 브래드 콜먼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10분짜리 짤막한 사과 영상을 올렸다. 어떤 변명도 없이 호미를 쥐고 땀 흘려 밭을 매는 그의 진솔한 모습이 담긴 영상의 제목은 단출하고 강렬했다.
I Was Wrong About Homi (나는 호미에 대해 완전히 틀렸었다).
※ 7: ㄱ자 철기가 미국의 로망이 되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뒤, 나는 미국 정원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전국 정원 어워즈(National Garden Awards)의 화려한 시상식 무대 정중앙에 서 있었다. 수천 명의 귀빈이 앉아있는 원형 극장의 돔 지붕 아래, 무대 뒤를 가득 채운 초대형 스크린에는 미국 전역을 감동하게 만든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어딘가의 작은 시골 마을, 수십 년의 세월이 켜켜이 내려앉은 낡은 대장간의 모습이었다. 용광로에서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가 튀어나오고, 주름진 장인의 거친 손이 묵직한 망치를 들어 올려 사정없이 쇠를 두드릴 때마다 화면 가득 불꽃이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캉, 카앙, 캉!
가장 원초적이고 투박한 그 생생한 망치질 소리가 최고급 스피커를 통해 시상식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이브닝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객석의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경외로움에 찬 탄성을 내뱉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작은 벼룩시장에서 '장난감 같은 이상한 쇳조각'이라며 손가락질받던 호미는, 당당하게 그해 어워즈의 가장 치열한 부문인 '올해의 가장 혁신적인 전통 도구' 최종 후보에 올라 있었다.
나비넥타이를 맨 백발의 사회자가 큐카드를 펼쳐 들고 마이크에 다가갔다.
"올해 후보에 오른 이 놀라운 도구는 현대 기술로 새로 발명된 것이 아닙니다.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완벽했던 형태를, 오만했던 우리가 너무 늦게 발견했을 뿐입니다. 이 작은 쇳조각은 우리에게 흙 앞에 무릎을 꿇는 법과 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회자의 헌사에 내 눈시울이 시큰하게 달아올랐다. 이윽고 봉투가 뜯어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찰나, 사회자의 힘찬 목소리가 극장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수상자는, 대한민국 장인들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걸작! K-Homi, Korean Homi Makers입니다!"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파도처럼 거대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귓바퀴를 때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마야가 환하게 웃으며 내 등을 세차게 밀어주었고, 앞줄 객석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브래드 콜먼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고 누구보다 열광적으로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가 크리스털로 된 무거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별빛처럼 터지는 가운데, 나는 마이크를 양손으로 꽉 쥐고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처음 제가 이 작고 투박한 도구를 캘리포니아의 박람회장에 들고 왔을 때, 사람들은 저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장난감이라 부르고 망가진 고철이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제 손에 들린 호미는 사람들의 비웃음 따위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늘 하던 대로, 묵묵히 흙을 팠을 뿐입니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땅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숨통을 조이는 잡초를 솎아내고, 여린 모종의 뿌리를 따뜻하게 북돋았습니다. 결국, 이 도구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포장지나 그럴싸한 말이 아니라, 흙 위에서 흘린 정직한 땀방울과 일의 결과로 완벽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나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스크린 한쪽에 띄워진 화상 연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국 시간으로는 모두가 잠들어있을 깊은 새벽이었지만, 화면 속에는 할머니와 대장간 사장님,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울음을 꾹 삼키며, 더없이 자랑스러운 한국말로 또박또박 외쳤다.
"할머니! 우리 호미가, 한국 대장간에서 두드린 우리 호미가 오늘 미국에서 제일 큰 상을 받았어요!"
화면 속 할머니는 눈가를 앞치마로 훔치면서도 잇몸이 다 보이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소리치셨다.
"아이고 내 새끼! 내가 뭐라 캤냐. 입으로 나불대는 놈들은 몰라도, 흙은 진짜를 다 알아본다 안 캤냐!"
할머니의 구수한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한 외국인 관객들조차 그 뜨거운 진심을 전달받은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치며 끝없는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날 밤, 전 세계를 상대로 배송을 시작한 알리익스프레스와 아마존의 K-호미 페이지에는 대문짝만 한 '전 세계 일시 품절' 마크가 찍혔다. 미국 전역의 원예 커뮤니티에는 수만 개의 리뷰가 눈보라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 인생을 구원한 완벽한 도구, 모든 정원사들이 꿈꾸는 궁극의 로망, 작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철기. 그것이 호미를 향한 찬사였다.
며칠 뒤, 캘리포니아 외곽에 있는 내 창고. 한때 먼지만 굴러다니던 외롭고 쓸쓸했던 텅 빈 공간은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갈 호미들이 담긴 수천 개의 택배 박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새로 도착한 택배 박스 하나를 뜯어, 기름종이에 고이 싸인 호미 하나를 집어 든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아침 햇살을 향해 그것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기역 자로 무심하게 휘어진, 시커멓고 작은 쇳조각. 누군가에게는 처음 보는 낯설고 신기한 물건이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오래된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대륙의 모든 정원사들이 잠 못 이루며 기다리는 숭고한 꿈의 도구가 되었다.
나는 매끄러운 나무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것은 그저 우연히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정직하게, 그리고 제대로 만들어진 것은, 언젠가 세상이 반드시 그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다는 기적 같은 증명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묵묵히 증명해 낸 이 아름다운 쇳조각의 진짜 이름은… 바로, 호미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의 오디오 드라마 '정원사들의 로망, 호미' 편은 어떠셨나요? 낯선 이국땅에서 비웃음을 이겨내고 흙과 땀의 진심으로 당당히 인정받은 호미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꾹 눌러주세요! 다음에도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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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따뜻한 수채화 풍경. 캘리포니아의 맑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정원 흙바닥에 전통적인 한국의 '호미' 하나가 깊게 꽂혀 있고, 그 옆에는 서양식 모종삽과 제초칼이 배경처럼 흐릿하게 놓여 있다. 글씨 없음, 16:9 비율.
(English) Warm watercolor illustration. A beautiful garden bathed in clear California sunlight. A traditional Korean 'Homi' (a G-shaped hand plow) is firmly planted into the rich soil in the foreground. Next to it, in a blurred background, lie a Western trowel and a weeding knife. No text, 16:9 ra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