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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즐기던 유럽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열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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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섭씨 45도의 로마. 뜨거운 에스프레소만이 진짜 커피라고 믿던 완고한 바리스타 마르첼로 앞에 한국인 유학생 민우가 나타난다. 얼음 한 조각도 허락하지 않던 그가 쓰러진 순간, 목숨을 구한 것은 평생 경멸해 온 커피였다. 얼음 가득한 한국식 ‘아아’ 한 잔이 로마를 넘어 유럽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 1: 에스프레소의 자부심과 로마의 타오르는 불볕더위
로마의 오래된 골목 위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평소라면 황금빛이라고 불렸을 햇살은 이날만큼은 거대한 화염방사기와 다르지 않았다. 테라코타 지붕은 달아오른 프라이팬처럼 이글거렸고, 밤새 품고 있던 열기를 토해내는 돌벽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거칠게 몰아쳤다.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은 비둘기들조차 날개를 벌린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관광객들은 지도 대신 생수병을 손에 쥐고 그늘에서 그늘로 이동했고, 광장 한쪽의 전광판에는 붉은 숫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45°C.
골목 끝에는 짙은 녹색 차양을 드리운 작은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빛바랜 금색 글씨로 적힌 이름은 라 돌체 비타. 삼 대째 같은 자리에서 영업해 온, 동네 사람들에게는 에스프레소의 성지로 통하는 곳이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작은 놋쇠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그러나 카페 안을 채운 것은 종소리보다 묵직한 구두 굽 소리와 뜨거운 증기의 포효였다.
마르첼로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쉰둘의 나이, 정성스럽게 넘긴 검은 머리, 콧수염 한 올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얼굴.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와 검은 조끼는 마치 갑옷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가 작은 잔을 들어 크레마를 살폈다. 헤이즐넛색 거품이 잔 표면을 고르게 덮고 있었다. 그는 숟가락 끝으로 크레마를 살짝 가른 뒤, 천천히 되돌아오는 흔적을 확인했다.
"완벽하군."
카운터에 기대 있던 단골 루이지가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았다.
"완벽한 건 알겠는데, 오늘은 조금 덜 뜨겁게 줄 수 없겠나? 혀가 아니라 내 영혼이 익을 것 같아."
마르첼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덜 뜨거운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가 아니야. 미지근한 타협일 뿐이지."
"그렇다면 물이라도 한 잔 같이 주게. 차가운 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전에 물을 마시는 건 향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훌륭한 습관이지.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식히려고 물을 찾는 거라면 모욕이야."
루이지가 선풍기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낡은 선풍기는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뜨거운 공기만 성실하게 휘저었다.
"마르첼로, 자네는 고집으로 체온까지 조절하나?"
"이탈리아인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태어났어. 이런 날씨쯤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맞서는 거야. 뜨거움에는 뜨거움으로. 그게 품격이지."
그가 잔을 들어 단숨에 에스프레소를 삼켰다. 곧바로 관자놀이에서 굵은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마르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가락으로 땀을 닦았지만, 이어서 반대쪽 관자놀이에서도 땀방울이 떨어졌다.
루이지가 피식 웃었다.
"품격이 양쪽에서 줄줄 흐르는군."
"이건 땀이 아니야. 원두를 향한 열정이지."
마르첼로는 스팀 밸브를 열었다. 뜨거운 증기가 쉭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찜통 속에 들어간 것처럼 붉어졌다. 그는 숨을 잠시 멈췄다가 손님들이 보지 않는 틈에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
'조금 덥기는 하군. 아주 조금.'
카페 벽에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흑백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지금의 마르첼로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엄숙한 얼굴로 잔을 들고 있었다.
마르첼로는 그 사진 앞에서 언제나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카페를 지켰고, 아버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원두의 품질을 낮추지 않았다. 마르첼로에게 에스프레소는 음료가 아니었다. 가족의 역사였고, 로마의 언어였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한 모금이었다.
관광객 한 명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아이스 라테 있나요?"
마르첼로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차가운 우유에 커피를 넣는 그 음료 말입니까?"
"네. 얼음을 아주 많이 넣어서요."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가게에는 얼음이 없습니다."
관광객이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이 날씨에 얼음이 없다고요?"
"얼음이 없는 게 아니라 커피에 넣을 얼음이 없는 겁니다. 얼음은 다친 발목이나 식히는 물건이지, 정성껏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고문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관광객은 당황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루이지가 길게 혀를 찼다.
"손님도 내쫓고, 얼음도 내쫓고. 이러다 자네 빼고 모두가 카페에서 사라지겠어."
"전통을 지키는 데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필요한 법이야."
그 순간 거리에서 자동차 경적이 길게 울렸다. 더위에 지친 운전자들의 고함이 뒤섞였고,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라디오에서는 폭염 경보가 반복되고 있었다.
오늘 로마의 최고기온은 45도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한낮의 야외 활동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십시오. 노약자는 서늘한 실내에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루이지가 라디오의 음량을 높였다.
"들었나?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라잖아."
"에스프레소에도 물이 들어가."
"겨우 이만큼이잖아."
루이지가 엄지와 검지로 작은 잔의 높이를 흉내 냈다.
마르첼로는 대답 대신 새 원두를 그라인더에 부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가 카페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평소 그가 사랑하던 고소한 향 사이로 뜨거워진 전선과 오래된 나무가 내뿜는 마른 냄새가 섞여 들었다.
그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고 카운터를 짚었다. 가슴속에서 북소리처럼 심장이 울렸다. 고개를 흔들자 시야가 다시 선명해졌다.
'아침을 거른 탓이야. 더위 때문은 아니야.'
마르첼로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본 뒤 조끼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로마가 불타는 한이 있어도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뜨겁게 나간다."
마치 도전장을 들은 것처럼 에스프레소 머신이 거친 증기를 토해냈다. 그 위로 태양은 더욱 높이 떠올랐고, 오래된 카페의 온도계 바늘은 위험한 속도로 오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 2: 한국인 유학생 민우와의 첫 만남
오후 두 시, 로마의 골목은 거대한 오븐 속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드물었다. 상점들은 차양을 최대한 내렸고, 젤라토 가게 앞의 메뉴판은 열기에 휘어져 있었다.
그 침묵을 깨고 운동화 끌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민우는 한 손에 구겨진 지도를 들고 비틀비틀 걸었다. 한국에서 로마로 온 지 겨우 열흘. 대학 등록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지도 속 골목과 실제 골목은 전혀 다른 미로처럼 느껴졌다.
등에 멘 가방은 뜨거운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티셔츠는 땀으로 등에 달라붙었고, 햇볕을 받은 머리카락에서는 금방이라도 연기가 피어오를 것 같았다.
'로마의 여름은 낭만적이라며. 누가 그랬어. 어디 있어, 낭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프라이팬뿐인데.'
민우는 빈 생수병을 흔들었다. 마지막 물방울 하나가 바닥에서 굴러다녔다. 그때 골목 끝의 녹색 차양이 눈에 들어왔다. 라 돌체 비타라는 글자는 제대로 읽히지도 않았지만, 카페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의 머릿속에 투명한 컵이 떠올랐다. 컵 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가득 쌓인 각얼음, 그 사이로 퍼지는 짙은 갈색 에스프레소. 빨대로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차가운 충격.
"아아."
민우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카페 문을 힘껏 열었다. 놋쇠 종이 다급하게 흔들렸고, 안에 있던 손님들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민우는 카운터까지 거의 달려가다시피 했다. 마르첼로 앞에 두 손을 짚은 그는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얼음 엄청 많이요. 가능하면 제일 큰 컵으로요. 톨보다 크고, 그란데보다 크고, 벤티쯤 되는 걸로요."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찻잔이 받침과 부딪치는 작은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르첼로는 천천히 민우를 위아래로 살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에스프레소에 찬물 넣고 얼음 가득 넣는 거요."
민우는 양손으로 커다란 컵 모양까지 만들어 보였다.
마르첼로의 표정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처럼 숙연해졌다.
"젊은이, 여기는 로마다."
"네. 저도 알아요. 길을 열 번쯤 잃었거든요."
"그 말이 아니야. 이곳은 에스프레소의 고향이고, 이 카페는 삼 대째 원칙을 지켜온 곳이지. 우리는 커피의 영혼에 물을 붓지 않아. 더구나 얼음으로 얼려 죽이지도 않고."
"영혼은 모르겠고 제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요."
민우가 벽의 온도계를 가리켰다. 바늘은 40도를 훌쩍 넘어가 있었다.
"밖은 45도예요. 그냥 에스프레소 두 샷 뽑아서 찬물하고 얼음에 넣어주세요. 빨리요. 정말 빨리요."
"빨리?"
마르첼로가 불쾌하다는 듯 콧수염을 매만졌다.
"좋은 커피 앞에서 서두르는 건 무례야. 원두가 자란 시간과 볶아진 시간, 추출되는 순간을 존중해야지."
"한국에서는 주문하고 삼 분 넘으면 사람들이 자기 주문이 누락된 줄 알아요."
"삼 분?"
"네. 출근길에는 삼십 초도 길어요."
루이지가 구석 테이블에서 흥미롭게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마르첼로, 저 청년 말대로 한번 만들어 주는 게 어떤가? 나도 구경은 해보고 싶군."
"루이지, 자네는 오늘 더위와 함께 이성도 잃었나?"
마르첼로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이걸 마시게. 진짜 커피는 작고 뜨겁고 강렬한 법이야."
민우가 인형 찻잔처럼 작은 잔을 내려다봤다.
"이건 커피가 아니라 샘플 아닌가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마르첼로는 굳은 얼굴로 잔을 민우 쪽으로 밀었다.
"한 모금이면 충분해. 혀 위에 머금고 향을 느껴. 다크 초콜릿, 구운 견과류, 캐러멜의 여운. 그런 뒤 단숨에 삼키는 거야."
"지금 제 혀가 원하는 건 다크 초콜릿이 아니라 북극해예요."
"커피를 갈증 해소용으로 마시는 것부터 잘못됐어."
"한국에서 커피는 기호식품이면서 생존 포션이에요. 잠을 깨우고, 정신을 붙잡고, 더위를 견디게 하죠. 특히 아아는 현대인의 장비 같은 거예요."
"아아라니. 비명을 지르는 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인 말이에요. 아아."
마르첼로가 발음을 시험했다.
"아… 아?"
"맞아요. 주문도 빨라지고 얼마나 효율적인데요. 아아 한 잔. 다섯 글자면 끝."
"음료의 이름마저 제대로 부를 인내심이 없다니."
"주문하는 데 시간을 아껴야 마시는 데 쓸 수 있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한쪽에는 삼 대의 전통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얼음 없는 여름을 거부하는 한국인의 절박함이 있었다.
마르첼로가 최후통첩을 하듯 말했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아니면 아무것도 없어."
민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페 밖으로 나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좋아요. 주세요."
마르첼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능숙하게 원두를 갈고, 포터필터에 담긴 가루를 단단히 눌렀다. 머신이 진동하자 가느다란 갈색 줄기가 작은 잔으로 흘러내렸다.
민우는 잔을 받아 들었다. 손끝으로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지금 이걸 마시는 게 맞나. 내가 전생에 사막에서 무슨 잘못을 했나.'
마르첼로가 두 팔을 모은 채 지켜봤다.
"향을 느끼게."
민우는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향만큼은 훌륭했다. 진한 초콜릿과 볶은 견과류 향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잔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이미 익어버린 얼굴을 다시 덮쳤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에스프레소를 털어 넣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민우의 눈이 커졌다. 강렬한 맛이 혀를 때렸고, 뜨거운 액체가 메마른 목구멍을 지나갔다.
"뜨거워!"
그가 펄쩍 뛰었다.
"맛을 봐야지, 온도만 느끼면 어떻게 하나!"
"맛을 느끼기 전에 혀가 은퇴했어요!"
민우는 카운터에 놓인 상온의 물을 급히 마신 뒤 문으로 달려갔다.
"내일 다시 올게요! 그때까지 얼음 준비해 두세요!"
"내일 와도 얼음은 없어!"
"그럼 제가 가져올 겁니다!"
문이 세차게 닫히며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마르첼로는 승리했다는 듯 턱을 들어 올렸다.
"젊은이들은 인내심이 부족해."
루이지가 창밖을 내다봤다. 민우는 혀를 내민 채 그늘을 찾아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인내심보다 체온이 부족해지기 직전인데."
마르첼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사용한 뜨거운 잔을 닦던 그의 손등 위로 땀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그는 카운터 아래에서 상온의 물을 연달아 두 잔이나 마셨다.
※ 3: 정전, 무너지는 고집
폭염은 사흘째 도시를 놓아주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돌바닥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아침이면 태양이 전날보다 더 뜨겁게 로마를 달궜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도시의 전력 사용량은 한계에 가까워졌다. 라디오에서는 절전을 요청하는 방송이 반복됐지만, 사람들은 냉방 장치를 끌 수 없었다. 창문을 여는 순간 사하라에서 날아온 듯한 열풍이 실내를 덮쳤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자 라 돌체 비타의 조명은 불안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마르첼로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또 전구가 말썽이군."
루이지가 에어컨 아래에서 신문을 부채처럼 흔들었다.
"전구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에스프레소 머신이 낮은 신음을 냈다. 냉장고의 모터 소리가 불규칙하게 끊겼고, 라디오 방송에는 지직거리는 잡음이 섞였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조명이 꺼지고, 선풍기 날개가 서서히 느려졌다. 에어컨은 마지막 숨을 토하듯 덜컹거린 뒤 완전히 침묵했다. 카페 안에 남은 것은 에스프레소 머신 보일러의 잔열과 당황한 사람들의 숨소리뿐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정전이야!"
"이런 날에 정전이라니!"
루이지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이 구역 전체가 나간 모양이야. 복구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군."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숙소로 돌아가겠다며 나갔고, 누군가는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루이지도 문 앞에서 마르첼로를 돌아봤다.
"자네도 문을 닫게. 지금은 장사보다 몸이 먼저야."
"카페는 정해진 시간까지 열어둔다."
"전기도 없는데 뭘 팔려고?"
마르첼로가 카운터 한쪽에 놓인 오래된 수동 레버 머신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시절부터 사용하던 기계였다.
"보일러에 남은 압력이 있고, 손으로 레버를 당기면 몇 잔은 더 뽑을 수 있어."
루이지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손님이 없잖아."
"한 명이라도 들어올 수 있지."
"그 한 명이 구급대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루이지가 떠나자 카페는 텅 비었다. 문밖의 골목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차례로 들리고,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이어졌다.
냉방이 멈춘 카페의 온도는 빠르게 올랐다. 벽과 바닥, 가구가 품고 있던 열기가 한꺼번에 풀려나왔다. 보일러가 식으며 내뿜는 잔열까지 더해지자 공기는 무겁고 끈적한 막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마르첼로는 출입문을 활짝 열고 셔츠 소매를 걷었다. 그래도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지만 금세 다시 땀이 흘렀다.
'이 정도로 문을 닫을 수는 없어. 아버지는 독감에 걸린 날에도 카운터를 지키셨다.'
그는 물병을 들었다. 바닥에는 한 모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틀었지만 미지근하다 못해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한참 바라보다 수도를 잠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통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관자놀이를 누르는 정도였지만, 곧 머리 전체를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아파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마르첼로는 의자에 앉으려다 손님이 들어오면 보기 좋지 않다며 다시 일어섰다.
"이탈리아인은 더위에 굴복하지 않아."
목소리는 힘없이 갈라졌다.
그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원두 통을 정리했다. 그러나 익숙한 라벨의 글씨가 겹쳐 보였다. 손을 뻗는 순간 통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두가 돌바닥 위로 우박처럼 쏟아졌다.
마르첼로는 몸을 숙였지만 중심을 잡지 못했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쳤다. 일어서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잠깐 쉬면 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면 돼.'
그는 카운터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아버지는 여전히 엄격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문을 닫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야 가장자리부터 어둠이 번졌다.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첼로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떨리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때 골목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민우는 한 손에 작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달리고 있었다. 정전으로 대학 도서관이 폐쇄되자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는 라 돌체 비타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설마 이 날씨에도 장사하는 건 아니겠지?'
민우가 안을 들여다봤다. 어두운 카페 바닥에 원두가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옆에 마르첼로가 쓰러져 있었다.
"아저씨?"
대답이 없었다.
민우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저씨, 제 말 들려요? 정신 차려보세요!"
마르첼로가 힘겹게 눈을 떴다.
"카페에서는… 뛰는 게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해요?"
민우는 즉시 휴대전화로 긴급 구조 요청을 했다. 위치와 상태를 알린 뒤 마르첼로의 조끼와 셔츠 깃을 풀었다. 문 가까운 그늘로 몸을 옮기고,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물병과 얼음을 꺼냈다.
얼음을 천으로 감싸 목과 겨드랑이 주변에 대자 마르첼로가 희미하게 몸을 떨었다.
"얼음은… 커피에 넣는 게 아니라… 다친 발목에 쓰는 거야."
"말할 힘 있으면 물부터 조금씩 드세요."
민우는 의식과 삼킴 상태를 확인하며 차가운 물을 천천히 마시게 했다. 마르첼로는 몇 모금 받아 마신 뒤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창백했던 얼굴에 조금씩 기색이 돌아왔다.
아이스박스 안에서는 각얼음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쳤다.
마르첼로의 시선이 그 얼음으로 향했다.
민우는 카운터 위의 수동 레버 머신을 발견했다. 보일러의 압력계 바늘은 아직 완전히 내려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마르첼로를 돌아봤다.
"아저씨, 저 기계 아직 쓸 수 있죠?"
"감히… 내 머신에 손대려고?"
"네. 지금부터 아저씨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커피를 만들 거니까요."
※ 4: 첫 모금, 무너진 정의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폭염으로 신고가 몰린 탓인지 소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민우는 카페 문을 활짝 고정한 뒤 마르첼로가 의식을 유지하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의 호흡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물음에는 분명하게 반응했다.
"이름이 뭐예요?"
"마르첼로 비안키."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내 카페야. 그리고 자네가 허락도 없이 내 카운터 안에 들어와 있지."
"좋아요. 잔소리할 정신은 있으시네요."
민우는 차가운 물을 한 번 더 건넸다. 마르첼로가 몇 모금 마신 뒤 고개를 기대자, 민우는 아이스박스에서 투명한 대용량 컵을 꺼냈다.
마르첼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컵은 뭐지?"
"한국 마트에서 샀어요. 어제 아저씨가 얼음을 준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전부 준비해 왔죠."
"집념이 지나치군."
"한국에서는 그런 걸 준비성이라고 해요."
민우는 컵에 얼음을 쏟았다. 단단한 각얼음이 투명한 벽에 부딪치며 짤랑거렸다. 숨 막히도록 뜨거운 카페 안에서 그 소리만큼은 작은 풍경처럼 시원하게 울렸다.
그는 차가운 생수를 얼음 높이의 절반까지 부었다. 얼음 표면에 기포가 달라붙었고 컵 바깥에는 금세 물방울이 맺혔다.
이제 에스프레소가 필요했다.
민우는 수동 레버 머신 앞에 섰다. 마르첼로가 힘겹게 손을 들었다.
"잠깐. 원두부터 확인해."
"쓰러진 와중에도 원두 걱정이에요?"
"오른쪽 통. 오늘 아침에 연 블렌드야. 도징은 십팔 그램. 탬핑은 수평으로. 비뚤어지면 추출이 망가져."
민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결국 도와줄 거면서 왜 그렇게 싫어했어요?"
"도와주는 게 아니야. 원두가 희생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을 뿐이지."
민우는 마르첼로의 지시에 따라 원두를 갈았다. 전기가 끊긴 그라인더 대신 작은 수동 그라인더의 손잡이를 돌렸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두 향이 퍼졌다.
포터필터에 가루를 담고 조심스럽게 탬핑한 뒤 머신에 끼웠다. 압력계 바늘은 간신히 추출 가능한 범위에 머물러 있었다.
"레버를 천천히 내려. 한 번에 힘주지 마."
"이렇게요?"
"조금 더. 그래, 거기서 잠깐 멈춰. 물이 커피층 전체를 적시게 기다려."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민우가 레버를 올리자 짙은 갈색의 에스프레소가 잔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검은 꿀처럼 진했고, 곧 황금빛 줄기로 변했다. 고요한 카페 안에 커피 향이 천천히 퍼졌다.
마르첼로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나쁘지 않군."
"칭찬이죠?"
"초보치고는 재앙을 피했다는 뜻이야."
민우는 투 샷을 추출한 뒤 잔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아래에서 크레마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는 마르첼로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얼음물 위로 천천히 부었다.
"안 돼."
마르첼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짙은 커피가 얼음 사이로 퍼졌다. 투명했던 물이 호박색으로 물들고, 갈색 소용돌이가 컵 바닥까지 길게 내려갔다. 뜨거운 에스프레소와 얼음이 만나는 순간, 작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얇은 김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내 에스프레소가… 물속에서 길을 잃고 있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나온 거예요."
민우는 빨대로 음료를 저었다. 얼음이 컵 벽과 부딪치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었다.
마르첼로가 고개를 돌렸다.
"필요 없어. 물은 마셨으니 됐네."
"이건 약이 아니에요. 구급대가 올 때까지 계속 몸을 식혀야 하고, 상태가 나빠지면 아무것도 마시면 안 돼요. 하지만 지금처럼 의식이 분명하고 삼킬 수 있다면, 맛은 볼 수 있잖아요."
민우는 컵을 그의 손이 닿는 곳에 내려놓았다.
"평생 싫어하려면 적어도 한 번은 제대로 마셔보고 싫어하세요."
마르첼로는 차갑게 맺힌 컵의 물방울을 바라봤다. 투명한 벽 너머로 커피와 얼음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다가 멈췄다.
'할아버지가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는 저 컵을 당장 깨뜨리라고 하겠지.'
그때 얼음 하나가 짤랑 소리를 내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마르첼로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민우가 컵을 건넸다.
"딱 한 모금만요."
마르첼로는 마지못해 컵을 받아 들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냉기가 낯설었다. 뜨거운 잔만 잡아온 그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그가 컵을 입술에 가져갔다.
차가운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마르첼로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냉기가 혀를 적시고 메마른 목구멍을 따라 내려갔다. 뜨거운 모래로 가득했던 몸속에 맑은 물길이 열린 듯했다. 그는 숨을 멈췄다가 길게 내쉬었다.
"이건…."
그가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얼음이 녹으며 강렬한 쓴맛은 부드러워졌지만, 커피의 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크 초콜릿의 묵직함 뒤로 구운 아몬드의 고소함이 따라왔고, 평소 뜨거운 온도에 가려져 있던 은은한 단맛이 깔끔하게 남았다.
마르첼로는 컵을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어째서 향이 남아 있지?"
"물을 탄다고 커피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산미가 이렇게 맑아질 수도 있나? 쓴맛은 가벼워졌는데 끝 맛은 오히려 또렷해."
"더운 날에는 그 깔끔함 때문에 마시는 거예요. 벌컥벌컥 마셔도 부담이 덜하고요."
마르첼로는 대답하지 않고 세 번째 모금을 마셨다. 이제는 누가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컵을 기울였다. 얼음이 그의 콧등을 건드리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 빨대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입에 물었다.
쭈욱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났다.
민우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천천히 드세요. 아무리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음료라도 그렇게 급하게 마시면 머리 아파요."
"커피를 빨대로 마시다니 기괴하군."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빨대를 놓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길게 들이마신 순간, 마르첼로의 표정이 굳었다. 이마를 짚은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왜 그래요?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머리가… 갑자기 얼어붙는 것 같아."
"아이스크림 두통이에요. 너무 빨리 드셔서 그래요."
"한국인들은 이런 고통까지 견디며 마신단 말인가?"
"그 고통을 넘으면 시원함이 옵니다."
마르첼로는 잠시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다시 컵을 들었다.
"훌륭한 음료에는 시련이 따르는 법이지."
"태도 바뀌는 속도가 정말 빠르네요."
"나는 사실을 존중할 뿐이야."
컵은 어느새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마르첼로는 바닥에 남은 얼음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물을 타면 에스프레소의 영혼이 사라진다고 믿었네. 그런데 사라진 게 아니었어. 다른 모습으로… 더 멀리 퍼진 거야."
"이제 아아를 인정하는 거예요?"
"아직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럼 안 드실래요?"
민우가 컵을 가져가려 하자 마르첼로는 재빨리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누가 안 마신다고 했나? 평가는 끝까지 해야 공정하지."
골목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구급대원들의 발소리가 들리고, 카페 문 앞에 붉은 불빛이 번졌다.
민우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르첼로는 마지막 한 모금을 천천히 삼켰다. 얼음만 남은 컵을 흔들자 청량한 소리가 어두운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한동안 컵을 바라보다가 민우에게 물었다.
"이걸 정말 한국 사람들은 매일 마시나?"
"여름에는 당연하고, 겨울에도 마셔요."
"겨울에도?"
"영하 십 도에도요."
마르첼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우라고 했지?"
"제 이름 기억하셨네요."
"내일 다시 오게."
"얼음을 가져오라고요?"
마르첼로가 비어 있는 컵을 들어 보였다.
"아니. 더 큰 컵을 가져오게."
구급대원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민우는 환하게 웃었다. 마르첼로는 들것에 오르면서도 손에 든 투명한 컵을 놓지 않았다. 컵 바닥의 마지막 얼음 한 조각이 짤랑 소리를 냈다.
그 작은 소리는 삼 대 동안 단단하게 닫혀 있던 문에 처음으로 생긴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차갑고 거대한 변화가 로마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 5: 라 돌체 비타의 차가운 변신
다음 날 아침, 라 돌체 비타의 문 앞에는 전에 없던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대형 제빙기 한 대, 투명한 유리컵 상자 세 개, 긴 빨대와 얼음 스쿱, 그리고 민우가 어디선가 구해 온 큼직한 냉수통이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돌아온 마르첼로는 의사의 경고대로 조끼 대신 얇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 하지만 한 손에는 퇴원 서류를, 다른 손에는 제빙기 설치 설명서를 들고 있었다.
민우가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봤다.
"오늘은 쉬셔야 한다고 했잖아요."
"나는 쉬고 있어. 무거운 건 전부 자네가 들고 있지 않나."
"그걸 지켜보면서 계속 명령하는 걸 보통은 감독이라고 해요."
"좋은 커피는 정확한 감독 아래에서 탄생하는 법이야. 제빙기를 창가에 너무 붙이지 마. 통풍 공간이 필요해."
민우가 제빙기를 밀며 한숨을 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음은 다친 발목에나 쓰는 거라면서요."
"사람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판단을 수정해야 해. 잘못된 고집을 평생 유지하는 건 전통이 아니라 게으름이지."
"하루 만에 철학이 너무 많이 바뀐 거 아니에요?"
마르첼로가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물론 모든 얼음 커피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야. 에스프레소와 물, 얼음의 비율을 정교하게 조절한 것만 허락할 생각이지."
카페 앞에서는 루이지가 커다란 칠판을 세우고 있었다. 그 위에는 마르첼로가 직접 쓴 새로운 메뉴가 자리했다.
Caffè Ghiacciato alla Coreana.
그 아래에는 민우가 덧붙인 짧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AH-AH.
루이지가 글씨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어떻게 읽는 건가? 아하?"
"아아예요. 아, 아."
"마시기 전에는 아아, 마시고 나면 아하. 꽤 훌륭한 이름이군."
마르첼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제안한 이름이 훨씬 품위 있어. 카페 기아차토 알라 코레아나. 한국식 얼음 커피."
"그 이름을 주문하다가 손님들이 더위로 쓰러지겠어요. 그냥 아아로 가죠."
제빙기가 처음으로 작동하자 카페 안에 낮은 진동음이 퍼졌다. 잠시 뒤 네모난 얼음들이 보관함으로 우르르 떨어졌다. 마르첼로는 뚜껑을 열고 보석을 감정하듯 얼음을 살폈다.
"모서리가 너무 둥글군."
"얼음 맛에는 문제없어요."
"잔 안에서 녹는 속도가 달라져. 너무 작으면 커피가 빨리 묽어지고, 너무 크면 마실 때 코를 공격하지."
"어제 코를 맞으셨군요."
"중요한 연구 자료였어."
두 사람은 오전 내내 비율을 시험했다. 에스프레소 한 샷은 향이 약했고, 세 샷은 갈증을 달래기엔 지나치게 강했다. 물이 많으면 밋밋했고, 얼음이 적으면 청량감이 부족했다.
마침내 마르첼로가 투 샷 에스프레소를 차가운 물과 얼음 위에 부었다. 짙은 갈색 층이 서서히 퍼지며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을 만들었다. 그는 향을 맡고 한 모금 맛본 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비율이야. 에스프레소의 중심은 지키면서도 목 넘김은 깨끗해."
민우가 컵에 빨대를 꽂았다.
"합격인가요?"
"잠깐. 얼음이 녹은 뒤의 맛도 확인해야 해."
"그 말은 한 잔 더 마시고 싶다는 뜻이죠?"
"품질 관리라고 불러주게."
오전 열한 시, 첫 손님이 들어왔다. 단골인 안나였다. 안나는 마르첼로 앞에 놓인 거대한 투명 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마르첼로, 카페에서 꽃병도 팔기 시작했나?"
"새로운 커피야."
"자네가 얼음을 넣은 커피를?"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냉각 에스프레소 음료지."
민우가 옆에서 속삭였다.
"그냥 아아라고 하세요."
안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컵을 받아 들었다. 얼음을 저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걸 마시면 로마 시민권을 빼앗기는 건 아니겠지?"
"어제까지의 나라면 그렇게 주장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의 나는 보증하네."
안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이어 두 번째 모금은 첫 번째보다 훨씬 길었다.
"세상에."
"어때요?"
"차가운데 커피 맛이 나."
민우가 웃었다.
"원래 그런 음료예요."
"아니, 내 말은 커피 맛이 제대로 난다는 거야. 쓰기만 하지 않고 고소하고, 끝은 아주 깨끗해. 무엇보다 이 지옥 같은 더위가 잠깐 사라졌어."
안나는 문밖에 있던 남편을 향해 손짓했다.
"카를로! 빨리 들어와 봐! 마르첼로가 드디어 더위를 인정했어!"
그 외침을 들은 행인들이 하나둘 카페 안을 기웃거렸다. 평생 뜨거운 에스프레소만 팔던 마르첼로가 얼음 커피를 내놓았다는 소문은 골목을 따라 번개처럼 퍼졌다.
"나도 안나가 마신 걸로 주게."
"저 차가운 갈색 음료 말이야."
"아아 하나!"
"나는 에스프레소를 진하게 해서 아아 두 잔!"
주문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민우가 소매를 걷었다.
"아저씨, 주문 먼저 받고 결제는 한 줄로 정리해요. 빨리빨리 갑니다."
"커피는 서두르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추출은 정성스럽게, 동선은 빠르게. 이게 한국식이에요."
마르첼로는 잠시 고민하다 카운터 위의 잔을 빠르게 정렬했다. 에스프레소를 연속으로 추출하는 동안 민우는 컵마다 얼음과 물을 채웠다. 두 사람이 손을 맞추자 주문들이 놀라운 속도로 완성됐다.
에스프레소가 얼음 위로 쏟아지고, 빨대가 꽂히고, 완성된 컵이 손님에게 전달됐다. 뜨거운 증기 소리와 차가운 얼음 소리가 절묘한 박자를 만들었다.
"아아 나왔습니다!"
손님들이 컵을 들고 골목으로 나갔다. 누군가는 카페 앞에서 단숨에 절반을 마셨고, 누군가는 컵을 이마에 대며 행복한 신음을 흘렸다.
"이건 기적이야!"
"에스프레소가 여름옷을 입었군!"
"마르첼로, 왜 이제야 만든 건가?"
마르첼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민우를 바라봤다.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이 젊은 친구가 가르쳐줬지."
민우가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고집 센 장인이 손님들 앞에서 자신의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린 것은 처음이었다.
마르첼로는 투명한 컵 하나를 높이 들었다.
"오늘 첫 잔은 내가 팔았지만, 이 문을 연 것은 민우가 가져온 얼음 한 상자였어."
사람들이 컵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아아!"
골목을 가득 채운 외침에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마르첼로는 얼음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도 여전히 벽에 걸려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두 사람이 전보다 조금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 6: 로마에서 시작된 차가운 물결
라 돌체 비타의 변화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에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동네 학생이 올린 짧은 영상 하나였다. 마르첼로가 엄숙한 얼굴로 투명한 컵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뒤에서 민우가 빠르게 얼음을 채우는 모습이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마르첼로가 빨대를 문 채 머리를 감싸는 장면이 담겼다.
너무 빨리 마셔서 또다시 아이스크림 두통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영상은 하룻밤 사이 수십만 번 공유됐다. 사람들은 그를 얼음에 굴복한 로마의 마지막 에스프레소 기사라고 불렀다. 관광객들은 콜로세움과 트레비 분수보다 먼저 라 돌체 비타를 찾아왔다.
카페 앞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생겼다. 독일인 여행객, 프랑스인 대학생, 스페인에서 온 부부, 북유럽 배낭여행객들이 저마다 휴대전화를 들고 기다렸다.
"아아 두 잔 주세요."
"얼음 많이요."
"에스프레소는 진하게 해주세요."
마르첼로는 이제 아아라는 발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주문이 밀리면 누구보다 크게 외쳤다.
"민우! 아아 세 잔, 하나는 샷 추가! 빨리빨리!"
민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완전히 한국 사람 다 되셨네요."
"나는 작업 효율을 높이는 것뿐이야."
"방금 빨리빨리라고 하셨어요."
"그 표현은 짧고 정확하더군."
마르첼로는 전통적인 추출법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아에 어울리는 원두를 찾기 위해 로스팅을 더 세밀하게 조절했다. 차가워졌을 때 단맛과 견과류 향이 또렷해지도록 배합을 바꾸고, 얼음이 절반쯤 녹은 뒤에도 맛의 균형이 유지되는지 시간을 재며 확인했다.
그의 연구 수첩에는 전에 없던 항목들이 빼곡히 적혔다. 얼음 크기, 물의 온도, 컵의 두께, 시간에 따른 향의 변화. 마르첼로는 새로운 문화를 대충 흉내 내는 대신 자신의 장인정신으로 온전히 이해하려 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카페 앞에 방송 차량이 멈췄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RAI 취재진이 들어오자 손님들이 술렁였다.
리포터가 마르첼로와 민우 사이에 섰다.
"최근 로마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가장 차가운 커피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마르첼로 씨, 불과 얼마 전까지 얼음 커피를 커피에 대한 모독이라고 부르셨다지요?"
마르첼로가 민망한 듯 콧수염을 만졌다.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장 큰 목소리로 비난하곤 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리포터가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당신이 이탈리아 커피 문화를 훼손했다고 비판합니다. 에스프레소를 지나치게 묽게 만들고, 미국식 음료를 한국식 유행으로 포장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민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르첼로를 바라봤다.
마르첼로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과 커다란 아아 컵을 나란히 놓았다.
"이 작은 잔은 내 가족의 역사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그 맛을 지킬 겁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다른 잔을 깨뜨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가 투명한 컵을 들어 올렸다. 얼음 사이에서 짙은 커피가 햇빛을 받아 호박색으로 빛났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자체가 어느 한 나라만의 발명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 음료를 계절과 세대를 넘어 즐기는 독특한 일상문화로 발전시켰습니다. 짧게 아아라고 부르고, 바쁜 순간에도 빠르게 주문하며, 한겨울에도 얼음을 포기하지 않지요."
민우가 조용히 웃었다.
"나는 그 문화를 통해 에스프레소의 새로운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이탈리아 전통의 패배가 아닙니다. 우리 커피가 다른 문화와 만나 더 넓은 언어를 얻은 것입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새로운 땅을 만납니다. 전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페 안에서 박수가 터졌다. 루이지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어 올렸다.
"잘 말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찬성했지만!"
마르첼로가 눈을 흘겼다.
"자네는 처음부터 얻어마실 생각뿐이었지."
인터뷰가 방송된 뒤 아아 열풍은 로마를 넘어 밀라노와 피렌체,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로 번졌다. 오래된 카페들은 메뉴판 한쪽에 차가운 에스프레소 음료를 추가했고, 젊은 바리스타들은 자신만의 물과 얼음 비율을 연구했다.
유럽 청년들은 투명한 컵을 흔들며 짧고 경쾌한 한국어를 따라 했다.
"아아."
처음에는 단순한 유행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름 속에서 낯선 문화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누군가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아아를 마셨고, 누군가는 한국어로 주문하는 영상을 올렸다.
라 돌체 비타의 벽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엽서가 붙기 시작했다. 파리의 바리스타가 보낸 레시피, 베를린 학생들의 단체사진, 스페인 해변에서 얼음 커피를 들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영업이 끝난 밤, 마르첼로와 민우는 카페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낮의 열기가 빠진 골목에는 모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민우, 처음 자네가 들어왔을 때 나는 자네가 커피를 모른다고 생각했네."
"저도 아저씨를 그냥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틀린 판단은 아니었어."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마르첼로는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었고, 민우는 얼음이 든 커다란 컵을 들었다. 서로 다른 두 잔이 가볍게 부딪쳤다.
"중요한 건 어느 잔이 더 옳은지가 아니겠지."
"맞아요. 마시고 싶은 사람이 행복하면 되는 거죠."
골목의 어둠 속에서 얼음이 맑게 울렸다. 작은 소리는 전파와 화면을 타고 국경을 건너며, 오래된 커피의 도시와 빠르게 움직이는 한국의 일상을 하나의 향기로 이어주고 있었다.
※ 7: 한겨울 서울에서 완성된 얼죽아 정신
일 년 뒤, 인천공항의 자동문이 열리자 마르첼로는 자신 있게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덮친 것은 로마에서 경험한 뜨거운 열풍이 아니었다.
칼날처럼 차가운 겨울바람이었다.
마르첼로는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민우, 공항 문이 고장 난 것 같네. 냉동 창고로 연결됐어."
두꺼운 패딩을 입은 민우가 웃으며 목도리를 건넸다.
"서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 영하 11도예요."
"사람이 살아도 되는 온도인가?"
"다들 잘 살아요. 지하철도 타고, 출근도 하고, 아아도 마시면서요."
마르첼로가 걸음을 멈췄다.
"마지막 말은 농담이지?"
서울로 향하는 동안 창밖에는 눈이 남은 들판과 빽빽한 아파트가 번갈아 지나갔다. 도심에 들어서자 높은 건물 사이로 수많은 카페 간판이 나타났다. 한 블록 안에 카페가 몇 곳씩 있는 풍경에 마르첼로는 연신 고개를 돌렸다.
"저기도 카페고, 그 옆도 카페인가?"
"네."
"길 건너편에도 두 곳이 있는데?"
"아마 골목 안에 세 곳쯤 더 있을 거예요."
"이 나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카페 같군."
차에서 내린 마르첼로는 목도리를 코끝까지 끌어올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피어났다. 그때 두꺼운 롱패딩을 입은 직장인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의 손에는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마르첼로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조금 뒤 교복 위에 패딩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갔다. 세 사람 모두 투명한 컵을 들고 있었다. 얼음이 흔들릴 때마다 익숙한 소리가 겨울 거리에 울렸다.
"민우."
"네?"
"저 사람들은 지금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 건가?"
"그렇죠."
"영하 11도인데?"
"그래도 아아는 아아니까요."
마르첼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장갑을 낀 채 빨대를 잡은 사람, 목도리 사이로 조심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 차가운 컵 때문에 손을 번갈아 가며 바꾸는 사람도 있었다.
"손이 얼어붙으면서도 왜 뜨거운 커피를 선택하지 않는 거지?"
"그게 바로 얼죽아 정신이에요."
"얼… 무엇?"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르첼로는 걸음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름부터 비장하군. 고대 전사들의 맹세 같아."
"한국에서는 취향을 지키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선언에 가까워요. 실내는 따뜻하고, 정신은 차갑게 깨우고 싶고, 뜨거운 음료를 식힐 시간은 없으니까요."
"역시 마지막에는 빨리빨리로 돌아오는군."
민우가 그에게 아아 한 잔을 건넸다. 마르첼로는 장갑 낀 손으로 컵을 받아 들었다. 차가움이 장갑 너머로도 전해졌다.
"로마에서는 이 음료가 나를 더위로부터 구했네. 서울에서는 내가 이 음료를 추위로부터 지켜줘야 할 것 같군."
그는 패딩 안쪽에 컵을 품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커피가 목을 넘어가자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눈빛은 또렷하게 빛났다.
"이제 알겠어. 이건 온도의 문제가 아니야."
"그러면요?"
"선택의 문제지. 세상이 춥다고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렇게 거창한 철학까지는 아니지만, 마음에 드네요."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서울 명동 한복판에 새로 문을 여는 라 돌체 비타 서울이었다. 입구에는 이탈리아의 짙은 녹색과 한국의 단정한 목재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벽 한쪽에는 로마 본점에서 가져온 가족사진이 걸렸고, 그 옆에는 마르첼로와 민우가 처음 만든 아아 컵의 사진이 자리했다.
오픈을 기다리는 줄은 건물 모퉁이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국 손님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온 관광객과 유학생, 여러 나라의 커피 애호가들이 함께 서 있었다.
마르첼로는 가위를 들고 리본 앞에 섰다. 수많은 카메라가 그를 향했다.
그는 준비해 온 한국어 인사를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르첼로입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저는 오래전부터 커피를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민우를 만나고 알았습니다. 한 잔의 커피에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마르첼로가 민우를 무대 앞으로 불렀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작고 뜨겁고 깊습니다. 한국의 아아 문화는 빠르고 시원하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두 문화가 만나도 어느 한쪽이 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맛이 태어납니다."
그는 서툴지만 힘찬 한국어로 외쳤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얼어 죽어도 아아!"
거리 전체에서 웃음과 환호가 터졌다. 민우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아저씨, 한국어 실력이 너무 과격해졌어요."
"정확하게 배운 것 아닌가?"
"정확해서 문제예요."
두 사람이 함께 가위를 움직이자 리본이 잘렸다.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손님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마르첼로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섰고, 민우는 투명한 컵에 얼음을 채웠다. 일 년 전 로마에서 시작된 동작이 서울에서 다시 이어졌다.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얼음 위로 쏟아지자 갈색 소용돌이가 피어났다.
첫 잔은 마르첼로가, 두 번째 잔은 민우가 들었다.
"민우, 자네가 내 생명을 구한 건 얼음물이었지만, 내 인생을 바꾼 건 자네가 건넨 낯선 생각이었네."
"아저씨도 제 생각을 그냥 따라 한 게 아니라 제대로 이해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고요."
두 사람은 잔을 마주 들었다.
"살루테."
"건배."
투명한 컵이 부딪치며 맑고 시원한 소리를 냈다.
카페 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아아를 든 채 명동 거리를 걸었다. 누군가는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누군가는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골랐다. 서로 다른 잔에서 피어난 향기는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섞였다.
문화는 한쪽이 다른 쪽을 굴복시킬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고집 뒤에 숨은 이유를 이해하고, 낯선 한 모금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더 넓어지는 것이었다.
로마의 뜨거운 자부심과 서울의 차가운 열정이 만난 그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우정이 얼음 가득한 두 잔 속에서 청량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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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전통과 차가운 취향은 서로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문화를 한 모금 맛볼 용기만 있다면, 오래된 고집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겨울에도 아아를 선택하는 얼죽아인가요, 아니면 계절과 상관없이 뜨거운 커피를 즐기시나요?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면 좋아요와 구독, 그리고 여러분의 커피 취향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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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45도의 불타는 로마 골목을 배경으로, 콧수염과 뒤로 넘긴 검회색 머리의 50대 이탈리아 바리스타 마르첼로가 얼음 가득한 대형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충격과 황홀함이 뒤섞인 표정을 짓는 장면, 옆에서 밝게 웃는 검은 머리의 20대 한국인 유학생 민우, 뜨거운 에스프레소 증기와 차가운 얼음의 대비, 콜로세움 실루엣, 역동적인 영화 포스터 구도, 풍부한 표정, 청량한 갈색 커피 소용돌이, 수채화 일러스트, 16:9, 글자 없음
A scorching Roman street at 45°C, Marcello, an Italian barista in his 50s with a mustache and slicked-back salt-and-pepper hair, holding a huge iced Americano packed with ice, his face showing shock and delight, Minwoo, a young Korean student with black hair, smiling beside him, dramatic contrast between hot espresso steam and cold sparkling ice, Colosseum silhouette, dynamic cinematic poster composition, expressive faces, refreshing amber coffee swirl, watercolor illustration, 16:9,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