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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엔지니어의 위암 1기 — 베를린에서 서울로, 다시 살아갈 결심 —
태그(15개):
#오디오드라마, #감동실화, #독일엔지니어, #위암극복, #한국의료, #따뜻한이웃, #서울생활, #정(情), #위내시경, #복강경수술, #치유의시간, #인생의전환점, #외국인환자, #휴먼드라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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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베를린에서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를 설계하며 감정조차 통제하던 완벽주의자 엔지니어. 한국 출장길에 우연히 받게 된 검사에서 조기 위암을 선고받습니다. 낯선 이국땅, 두려움에 떨던 그를 살려낸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한 의료 시스템과 '아프면 돕는 게 당연하다'며 다가온 한국인들의 무심하고도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 1: 베를린, 그리고 흐릿한 경고등
독일 베를린 외곽에 위치한 붉은 벽돌 건물의 반도체 설계 사무소. 창밖으로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차가운 빗방울이 유리창을 규칙적으로 때리고 있다. 사무실 안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가 클릭 되는 건조한 마찰음만이 가득하다. 마흔두 살의 수석 엔지니어 요하네스 케플러는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을 얼굴에 온전히 받으며, 12년째 늘 그래왔듯 같은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있다. 화면 속에는 수백만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미세한 반도체 회로 패턴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그의 눈동자는 화면의 격자무늬를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효율적이고, 빈틈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사람. 동료들은 쉬는 시간 커피 머신 앞에 모여 그를 향해 "저 남자는 아마 자기 심장 박동수나 감정의 기복도 나노미터 단위로 통제할 거야"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요하네스 본인 역시 그 평가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인생은 설계된 회로도처럼 예측 가능해야 하고, 변수는 통제되어야만 완벽해진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그 완벽한 통제망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점심으로 딱딱한 호밀빵과 소시지를 씹어 삼키고 나면, 어김없이 명치끝을 둔탁한 쇳덩어리로 꾹꾹 짓누르는 듯한 묵직한 불쾌감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소화불량이거나, 최근 마감 기한이 다가오는 새 프로젝트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성 위염쯤으로 여겼다.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며 애써 통증을 억누르려 했지만,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그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독일의 공공 의료 시스템은 체계적이고 훌륭했지만, 치명적인 응급 환자가 아닌 이상 전문의를 만나 위내시경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하염없이 대기해야만 했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설계 업무에 치여 살던 요하네스는 서랍 속에 쌓여가는 제산제 빈 껍질들을 보며, "조금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며칠 푹 쉬면 나아지겠지"라는 흔한 핑계로 진료 예약을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임원진은 한국의 굴지 기업과 새로운 합작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중대한 프로젝트의 기술 총괄 담당자로 요하네스를 지명한다. 단기 출장이라고는 하지만 최소 한 달 이상 낯선 환경에 머물러야 하는 일정이었다. 요하네스는 인사팀의 통보를 받고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낯선 나라, 알아들을 수 없는 복잡한 언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매운 음식들. 자신의 완벽하게 통제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처음엔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표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 없이는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는 회사의 간곡한 설득에, 결국 그는 무거운 짐 가방을 챙겨 프랑크푸르트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열두 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 내내, 기내식으로 나온 부드러운 오믈렛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명치의 통증은 더욱 날카롭게 그를 괴롭혔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내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던 그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파리한 얼굴을 보며 덜컥 겁이 났다. 인천국제공항의 매끄러운 바닥에 발을 내딛으며, 그는 처음으로 굳게 닫아두었던 생각의 문을 열었다.
'이대로는 무사히 출장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지도 몰라. 속도가 빠르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한 번 검사라도 받아볼까.'
입국장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한국 측 협력사에서 마중을 나온 담당자 이수진 대리가 환한 미소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그녀는 요하네스와 인사를 나누던 중, 그의 창백하게 질린 안색과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조심스레 물었다.
"요하네스 씨, 비행이 너무 고되셨나요? 혹시… 어디 몸이 불편하시거나 아프신 곳이 있으신가요?"
요하네스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들키는 것이 자존심 상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손사래를 쳤지만, 눈치 빠른 수진은 이미 그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와 배를 움켜쥐는 미세한 손동작에서 무언가를 알아챈 듯했다.
그날 저녁, 호텔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앓고 있던 요하네스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수진이 보낸 메신저였다. 영어로 번역된 메시지 아래에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의 외국인 진료 센터 연락처와 종합검진 예약 시스템 링크, 심지어 택시를 탔을 때 기사에게 보여줄 한국어 주소까지 빼곡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출장 일정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별다른 구구절절한 설명도, 자신이 챙겨주었다는 생색도 없는 무심하고도 담백한 메시지. 요하네스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묘하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평생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아온 그에게, 이 낯선 한국인의 작은 배려는 차가운 회로에 흐르는 따뜻한 전류 같았다. 호텔 창밖으로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게 번쩍이는 서울의 역동적인 야경을 내려다보며, 요하네스는 마침내 자신의 병든 몸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한다.
※ 2: 닷새 만의 진단
다음 날 아침, 요하네스가 덜컹거리는 택시를 타고 도착한 서울의 대형 병원은 마치 거대한 미래 도시의 우주 정거장을 방불케 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가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일 처리를 하는 속도 그 자체였다. 수진이 알려준 병원의 국제 진료 센터에는 유창한 영어와 독일어를 구사하는 전문 외국인 진료 코디네이터가 상주하고 있었고, 요하네스의 굳은 표정과 증상을 들은 코디네이터는 일사천리로 진료 예약을 잡아주었다. 베를린이었다면 전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꼬박 한 달을 넘게 애태우며 기다렸어야 할 위내시경 검사가, 출장 일정 사이 비어있는 불과 이틀 뒤 오전으로 당장 잡힌 것이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 압도적인 효율성에, 요하네스는 엔지니어로서 묘한 감탄마저 느꼈다.
검사 당일, 깨끗하고 서늘한 내시경실 침대에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눕자 간호사가 그의 팔에 수면 유도제를 주사했다.
"약 들어갑니다. 편안하게 심호흡하세요."
혈관을 타고 퍼지는 싸늘한 기운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던 그의 의식은 순식간에 깊고 검은 늪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회복실의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직 남아있는 마취 기운에 비틀거리던 그를, 의사가 조용한 상담실로 불렀다.
한국인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모니터 화면에 선명하게 떠오른 위장 내부의 사진들을 띄워놓고 차분하고 이성적인 목소리로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사의 마우스 포인터가 위 점막의 한 지점을 정확히 가리켰다. 주변의 매끄럽고 붉은 정상 조직과는 미묘하게 색깔이 다르고, 표면의 결이 헐어있는 듯한 작은 병변이었다.
"내시경으로 보았을 때 악성 종양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부위가 있어 조직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최종 결과는 늦어도 사흘 안에 나옵니다."
사흘. 숫자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죽음의 선고를 기다리는 요하네스에게 그 72시간은 평생을 통틀어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낮에는 한국의 협력사 직원들과 회의실에 앉아 도면을 펼쳐놓고 반도체 라인의 수율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그의 뇌 구조 절반은 온통 그 모니터 화면 속 시커멓고 붉은 얼룩에 사로잡혀 있었다. 밤이 되면 룸서비스로 시킨 음식조차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아 억지로 삼키고는, 노트북을 켜고 독일어로 위암의 증상과 생존율을 미친 듯이 검색했다. 화면을 채우는 비관적인 단어들에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마침내 결과가 나오기로 약속된 날. 진료실에 앉은 요하네스의 손끝은 차갑게 얼어붙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담당 의사는 두꺼운 안경을 고쳐 쓰며, 한치의 감정 동요 없이 또박또박 분명한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조기 위암입니다. 1기 초기 단계에 해당합니다."
'암.' 그 한 음절의 단어가 고막을 때리는 순간, 요하네스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고 예리한 칼날이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시야가 핑 돌며 호흡이 가빠졌다. 하지만 그가 완전한 공황 상태로 빠져들기 직전, 의사의 침착하고도 확신에 찬 다음 말이 그의 멱살을 강하게 쥐고 현실로 끌어올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세포가 점막층과 점막하층에만 얌전하게 국한되어 있습니다. 위벽을 깊이 파고들지 않았고, CT와 초음파 결과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의 전이 소견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요하네스 씨, 한국은 위암 발생률이 높은 만큼 조기 발견과 수술 치료에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압도적이고 선도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저희 의료진이 매일 밥 먹듯이 하는 수술입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완치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굳건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얄팍한 위로가 아니라, 수만 번의 칼을 쥐고 생명을 살려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압도적인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온 요하네스는 곧바로 노트북을 켜고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오랜 주치의와 화상 통화를 연결했다. 모니터 너머의 주치의 역시 그의 검사 기록을 전송받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본국인 독일로 돌아와도 당연히 치료와 수술은 가능했다. 수술을 예약하고 절차를 밟아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통화를 마친 후 요하네스가 맞닥뜨린 현실의 벽은 냉혹했다. 독일에서 암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최소 한 달 이상의 긴 대기 시간, 그동안 내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 논문들을 검색하며 알게 된 한국과 독일 의료진의 위암 수술 건수의 압도적인 경험치 차이. 이 두 가지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비교하고 나자, 평생 효율과 정확성을 따지며 살아온 엔지니어의 차가운 두뇌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며 명확한 정답을 내놓고 있었다.
※ 3: 머무를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깊은 밤, 서울의 화려한 불빛을 가득 머금은 비가 호텔 방의 통유리창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요하네스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노트북 화면에 엑셀 창을 띄워놓고, 양국의 의료 데이터를 나노미터 단위로 쪼개듯 치밀하게 비교하고 있었다.
독일의 의료 시스템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하고 체계적이었다. 언어가 통하고 가족이 있는 익숙한 고향의 품. 심리적인 안정감으로는 당장 내일 비행기 표를 끊고 돌아가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수치와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이 대형 병원 단 한 곳에서 일 년 동안 시행하는 위암 절제 수술 건수는, 베를린의 저명한 주치의가 평생을 통틀어 집도한 환자 수를 까마득하게 넘어설 정도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식습관의 영향으로 위암 발생률이 유독 높았고, 역설적이게도 그 불행한 통계는 한국 외과의사들의 손끝에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임상 경험과 정교한 기술을 축적하게 만들었다. 내시경을 뱀처럼 유연하게 밀어 넣어 암세포가 있는 점막만 종이장처럼 얇게 떼어내는 시술부터, 환자의 배를 가르지 않고 작은 구멍만 뚫어 로봇 팔로 수술하는 복강경 기술, 그리고 수술 직후 환자의 회복을 돕는 촘촘한 영양 관리 프로토콜까지. 한국의 위암 치료 과정은 그가 평생을 몸담아 온 반도체 공정만큼이나 완벽하게 모듈화되고 정교하게 표준화되어 있었다. 데이터를 맹신하는 엔지니어 요하네스에게, 이 수치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의 확률이자 살고 싶다는 강력한 동아줄이었다.
망설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침이 밝자마자 그는 독일 본사에 장문의 이메일을 작성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리고, 출장 기간을 수술과 회복이 가능할 때까지 무기한 연장해 줄 것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소식을 접한 독일 본사의 인사팀은 처음엔 몹시 당황하며 자국으로 돌아와 치료받기를 권유했다. 외국에서의 수술은 보험 처리와 행정적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한국 의료진의 수술 계획서와 통계 자료,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당장 수술을 받겠다는 요하네스의 바위처럼 단단한 의지를 확인하고는, 결국 며칠 만에 그의 현지 체류와 의료비 지원을 전폭적으로 승인해 주었다.
이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결정을 현실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다름 아닌 한국 협력사의 수진 대리였다. 그녀는 요하네스의 암 판정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일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달려왔다. 그리고는 회사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퇴근 시간까지 반납해가며 요하네스의 병원 동행을 자처했다. 까다로운 수술 동의서를 완벽한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해주고, 복잡한 입원 수속과 행정 절차를 마치 자신의 가족 일처럼 앞장서서 매끄럽게 처리해 주었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병원 로비의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요하네스가 수진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진 씨. 대체 왜 이렇게까지 제게 마음을 써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당신의 업무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일입니다. 저는 그저 프로젝트가 끝나면 독일로 훌쩍 돌아갈, 잠깐 다녀가는 이방인일 뿐인데요."
수진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맑게 웃었다.
"글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우리 동네에 찾아온 손님이 타지에서 크게 아프다잖아요. 아프면, 무조건 도와주는 거죠. 그게 뭐 특별하고 대단한 일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원래 정(情)이 좀 많아서 이런 거 그냥 못 지나칩니다. 빨리 나아서 우리 라인 설계 완벽하게 마무리해주셔야죠."
수진의 그 쿨하고 무심한 듯 따뜻한 한마디가, 요하네스의 얼어붙어 있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여린 살을 툭 하고 건드렸다. 평생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무능함이라 여기며, 모든 것을 혼자서 철저하게 계산하고 이성적으로 결정해 온 팍팍한 삶이었다. 대가 없는 호의를 경계하며 살았던 그에게, 아무런 득실을 따지지 않고 건네지는 온전한 도움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마음 편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낯설고 벅차올랐다.
그날 저녁, 호텔 방에 홀로 앉은 요하네스는 노트북 캠을 켜고 베를린에 있는 늙은 어머니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화면 속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자, 평생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던 무뚝뚝한 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저 결정했어요. 당장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낯선 한국에서 수술받기로요."
어머니는 놀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만류하려 했지만, 요하네스는 희미하지만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 마세요, 엄마. 제 인생을 걸고 분석한 데이터가 이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긴 참 이상한 나라예요. 생판 남인 저를 자기 가족처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 사람들은 참 따뜻해요. 저, 이 사람들에게 기대서 꼭 살아서 돌아갈게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안도 섞인 흐느낌이 들려왔고, 요하네스는 창밖의 빗방울 너머로 빛나는 서울의 불빛을 바라보며 생전 처음으로 온전한 안도감을 느꼈다.
※ 4: 수술실의 정밀함
마침내 수술 전날, 병원 입원 수속은 그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매끄럽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병실 침대 위에는 외국인 환자인 그를 위해 완벽한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된 수술 전 주의사항과 회복 안내문이 책자처럼 놓여 있었다. 간호사들은 바쁘게 병실을 오가면서도, 번역기 앱을 켜서라도 서툰 영어를 섞어가며 그와 끝까지 눈을 맞추고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불안해하는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그 섬세한 배려는 언어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 요하네스의 수술을 집도할 중년의 외과 교수가 레지던트들을 이끌고 직접 회진을 돌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의사는 침대 곁에 서서, 태블릿 화면에 위장의 구조도를 띄워놓고 마치 건축가가 설계 도면을 브리핑하듯 차분하고 정교하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하네스 씨, 내일 수술은 전신 마취 하에 복강경으로 진행할 겁니다. 배를 크게 가르는 개복 수술이 아니라, 복부에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구멍 4개만 뚫고 카메라와 로봇 팔을 넣어서 진행합니다. 화면을 보시죠. 이 붉은 점이 암세포입니다. 우리는 이 병변을 포함해서, 암세포가 미세하게 번져있을지 모르는 주변의 안전 마진 구역, 그리고 위 주변의 림프절까지 아주 깔끔하고 완벽하게 절제해 낼 겁니다. 듣자니 아주 훌륭한 반도체 엔지니어시라더군요? 나노미터를 다루는 분이시라니, 이 정밀한 절제 공정이 무슨 의미인지 저보다 이해가 훨씬 빠르시겠네요."
의사의 재치 있는 농담에 굳어있던 요하네스의 입가에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생 돋보기를 끼고 정밀한 공정과 확률을 다뤄온 그에게, 의사가 브리핑하는 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술 계획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잘 설계된 완벽한 회로도처럼 절대적인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수술 당일 아침. 간호사들이 침대를 밀고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 천장의 하얀 형광등 불빛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요하네스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호흡이 아주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금속성 기계음이 들리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고 수술대 위로 몸을 옮기자, 묵직한 공포가 엄습할 뻔했다. 그때, 수술복으로 무장한 마취과 의사가 다가와 그의 크고 차가운 손을 양손으로 가볍고 따뜻하게 꽉 잡아주었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의사의 눈웃음이 부드러웠다.
"요하네스 씨. 긴장 푸세요. 아주 좋은 꿈 꾸고 일어나면, 뱃속의 나쁜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게 다 잘 끝나 있을 겁니다. 자, 약 들어갑니다. 편안하게 하나, 둘, 셋 세어보세요."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묵직한 약기운. 요하네스의 의식은 셋을 다 세기도 전에 깊고 깊은 심연의 바다로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부드럽게 흔드는 감각과 함께, 귓가에 웅웅거리는 백색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을 때, 그의 시야에는 익숙한 회복실의 따뜻한 조명 천장이 흐릿하게 들어왔다. 코끝에는 소독약 냄새가 물씬 풍겼고, 복부에는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옆에서 모니터 수치를 체크하던 간호사가 요하네스가 눈을 뜬 것을 보고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다가와 한국어와 영어를 다정하게 섞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요하네스 씨, 눈이 떠지세요? 수술 아주 잘 끝났어요. 퍼펙트하게 잘 됐습니다. 이제 다 끝났어요."
마취가 아직 덜 풀려 혀가 굳은 요하네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몽롱한 그의 눈가에서 영문 모를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관자놀이를 적셨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빠져나간 마음의 빈자리에, 살았다는 압도적인 안도감이 폭포수처럼 밀려들었다.
며칠 뒤, 의사가 밝은 표정으로 병실을 찾아와 절제해 낸 조직의 최종 병리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축하합니다. 절제 부위의 단면은 암세포 하나 없이 아주 깨끗하게 떨어졌고, 가장 걱정했던 림프절 전이도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완벽했습니다. 사실상 완치에 가깝습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시더라도 정기적인 검진만 꼼꼼히 잘 받으시면 예전처럼 똑같이 건강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는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맑고 푸른 서울의 하늘을 바라보며, 의사의 그 말을 마음속으로 수백 번이고 되뇌었다. 살았다. 내가 다시 살게 되었다. 그것도, 나를 아는 이 하나 없던 이 낯선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너무나도 완벽하게 다시 태어났다.
※ 5: "천천히 드세요"
성공적인 수술은 모든 고통의 끝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또 다른 길고 험난한 여정의 첫걸음일 뿐이었다. 위장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잘라내어 덜어낸다는 것은, 평생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먹고 소화시키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생존 행위를 갓난아이처럼 밑바닥부터 완전히 새롭게 배워나가야 함을 의미했다. 회복의 과정은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휴식이 결코 아니었다. 위장의 용적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소화 기능이 턱없이 떨어진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급하게 음식을 삼키거나 덜 씹은 거친 알갱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요하네스의 몸은 즉각적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명치끝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경련과 함께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 덤핑 증후군(Dumping Syndrome)의 끔찍한 고통이 그를 무자비하게 덮치곤 했다.
수술 다음 날부터 병원 소속의 임상 영양사가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요하네스의 병실을 찾아왔다. 그녀는 외국인인 그를 위해 특별히 영문과 독문으로 번역된 두꺼운 맞춤형 식단 가이드북을 병상 탁자 위에 펼쳐놓고, 마치 유치원생에게 글자를 가르치듯 아주 세밀하고 꼼꼼하게 식사법을 설명해 주었다. 식사는 건더기 하나 없이 맑고 뽀얀, 도무지 씹을 것이 없는 묽은 미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에는 아주 곱게 갈아내어 형태를 잃은 흰죽, 그리고 혀와 입천장만으로 으깨어질 만큼 푹 익힌 부드러운 채소와 생선살로 아주 조심스럽고 더디게, 억장이 무너질 만큼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그 지루하고도 예민한, 고통스러운 회복의 시간 동안 요하네스가 주치의, 담당 간호사, 영양사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앵무새처럼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절박하게 들었던 말은 아주 짧고 분명한 한국어 문장 하나였다.
"천천히 드세요. 꼭꼭 씹어서, 아주 천천히 드세요."
요하네스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자신의 낡은 갈색 가죽 노트에 그 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로마자 알파벳으로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Cheon-cheon-hi deu-se-yo.'
그에게 그 다섯 글자의 문장은 처음엔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단순하고 기계적인 의학적 식사 지침으로만 들렸다. 하지만 며칠 동안 그 문장을 입안에서 맴돌며 곱씹을수록, 그것은 그의 40년 인생 전체를 정면으로 관통하고 뒤흔드는 거대하고 묵직한 철학적 화두처럼 다가왔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는 단 1분 1초의 오차나 지연도 용납하지 않고, 오직 '가장 빠르게, 가장 정확하게, 가장 효율적으로'만을 유일한 인생의 신조로 삼아 살아온 전형적인 독일의 완벽주의자 수석 엔지니어였다. 그에게 있어 식사란 미각의 즐거움을 음미하는 여유로운 행위가 아니라, 빡빡하게 이어지는 설계 회의 일정 사이에 영양분을 몸이라는 기계 장치에 연료처럼 욱여넣듯 해치우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한 손으로는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씹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마우스를 클릭해 대던 베를린에서의 메마른 점심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 낯설고 아득한 동방의 나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갓 돌아와 아직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그에게, 그가 평생 살아온 궤적과는 완벽하게 정반대의 삶의 방식을 강렬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천천히. 절대 서두르지 말고. 머리가 이성적으로 내리는 차가운 명령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장기가 스스로 회복하려 애쓰는 그 자연의 더딘 속도에 온전히, 그리고 기꺼이 맞춰서 호흡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하네스는 은빛 숟가락으로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멀건 미음을 반 스푼 떠서 입에 넣었다. 아무것도 씹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속으로 하나부터 서른까지 숫자를 천천히 세며 미음을 침과 섞어 아주 더디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낯설고 느릿한 식사 시간 동안, 그는 처음으로 병실 창문 너머로 뭉게구름이 어떻게 모양을 바꾸며 흘러가는지를 가만히 지켜보았고, 병동 복도를 바삐 걷는 간호사들의 지친 고무신 발걸음 소리를 들었으며, 흉부에 통증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 벅찬 호흡의 경이로움을 비로소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머무는 6인실 다인실 병동은 언제나 다양한 소음과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바로 옆 창가 쪽 침대를 쓰는 백발의 한국인 할아버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힘겨운 수술을 이겨내어 회복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영어나 독일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요하네스 역시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까만 머리의 이방인이었지만, 신음 소리가 오가는 밤을 함께 지새운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묘하고도 끈끈한 연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보호자인 할머니가 집에서 정성껏 싸 온 부드러운 두부조림이나 푹 끓여낸 호박국 같은 반찬 통을 열 때마다, 자꾸만 요하네스의 밋밋한 식판 쪽으로 슬쩍슬쩍 밀어주곤 했다.
"이거 먹어, 이거. 이 양반이 덩치는 산만한데 허여멀건 죽만 먹어서 어떡해. 기운이 나겠어? 우리 마누라가 한국 콩으로 슴슴하게 만든 거라 부드럽고 몸에 아주 기가 막히게 좋아. 자, 한 입 먹고 힘내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 고향 가야지."
할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요하네스는, 처음엔 위생상의 문제와 병원의 엄격한 식단 통제를 이유로 정중하게 손사래를 치며 몇 번이나 곤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의 거절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투박하고 굵은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치켜들어 보였다. 그 거칠지만 다정한 미소와 주름진 손동작, 그리고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이려 애쓰는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에, 요하네스는 결국 항복하듯 포크를 들어 두부 한 조각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부드럽게 으깨지며 퍼지는 간장의 짭조름하고 뭉근한 고소한 맛. 소독약 냄새만 가득한 삭막한 병실 안에 피어오르는 이 기묘하고도 끈끈한 '정(情)' — 어떠한 과학적 통계나 의학적 효율성 수치로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 뜨거운 인간의 온도가, 요하네스의 찢어진 위장과 두려움에 무너졌던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으로 강하게 밀어 올리며 치유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등받이를 높인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옆 병상 할아버지의 곤하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들으며 난생처음으로 벅찬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속도를 높여 결승선에 빨리 도달하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내 곁의 누군가와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온도'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 6: 퇴원, 그리고 새로 보이는 도시
기적처럼 순조롭고도 길었던 이 주간의 입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퇴원 수속을 밟던 날. 요하네스가 한결 가벼워진 짐 가방을 끌고 묵직한 병원의 유리 회전문을 나설 때, 그를 밖에서 맞이한 늦가을 서울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득하게 높고 투명하게 맑았다. 병원 앞 거리의 풍경은 수술 전 그가 죽음의 불안에 떨며 택시 창밖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던 그 복잡하고 차가운 회색빛 빌딩 숲 그대로였지만, 죽음의 캄캄한 문턱을 넘어 다시 태어난 그의 눈에 비친 이 거대한 도시는 이제 완전히 다른 층위의 세상처럼 경이롭게 다가왔다.
좁은 골목 구석구석에서 아지랑이처럼 풍겨 나오는 구수하고 매콤한 식당들의 음식 냄새들은 이제 불쾌함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삶의 찬란한 향기로 느껴졌고, 늦은 밤까지 환하게 네온사인 불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편의점과 동네 약국들은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지친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든든한 등대처럼 보였다. 퇴원 기념으로 병원 앞까지 직접 마중을 나온 협력사의 수진 대리가, 부드러운 회복식을 편하게 함께 먹자며 요하네스를 병원 근처의 오래된 전통 죽 전문점으로 이끌었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비어있는 그의 위장을 기분 좋게 자극했다. 수진이 미리 주문해 둔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전복죽 한 그릇을 앞에 둔 요하네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처럼 시계 초침에 쫓겨 급하게 음식을 욱여넣듯 식사하지 않았다. 그는 은빛 숟가락으로 푹 퍼진 밥알을 조심스럽게 떠서 아주 천천히, 잘게 다져진 전복의 부드러운 식감과 내장의 깊고 농밀한 고소함을 온전히 음미하며 한 술 한 술 경건하게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여유롭고 평온하기 그지없는 식사 모습을 맞은편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수진이, 찻잔을 든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요하네스 씨, 이제 죽 드시는 폼이 아주 제법이신데요? 처음엔 숟가락질도 어색해하시더니 이젠 아주 자연스러워요. 힘든 수술 잘 버텨내시고 회복하시더니 이젠 진짜 한국 사람 다 되셨어요."
그녀의 가볍고 장난 섞인 농담이, 어쩐지 요하네스에게는 자신이 새롭게 얻은 두 번째 삶을 온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묵직한 칭찬처럼 들렸다.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하며 이어지는 회복 기간 동안, 요하네스는 회사 업무의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매일 조금씩 걷는 거리를 늘려가는 짧은 외출을 반복하며,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핏줄과 숨결을 몸소 익혀나갔다. 자신이 목숨을 빚진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차가운 수술실 밖의 일상에서도 경이로울 만큼 환자 친화적이고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정기 추적 검진 일정은 그의 숙소 동선에 맞춰 가장 효율적이고 빈틈없이 잡혔고, 복잡한 종이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긴 줄을 설 필요 없이 병원 자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어제 뽑은 피검사 결과와 다음 복약 일정을 모바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다. 숙소 모퉁이마다 자리 잡은 친절한 약사들, 휠체어나 노약자가 언제든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려된 저상 버스와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시스템, 그리고 밤늦은 시간 갑작스럽게 통증이 찾아와도 언제든 119를 부르면 안심하고 달려갈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야간 응급 진료 체계까지.
그는 단순히 뛰어난 외과 의사가 메스로 암세포를 도려낸 것이 치유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환자가 수술 후 온전한 일상으로 무사히 복귀하기까지, 이 나라의 거대한 사회적 인프라와 촘촘한 보건 시스템이 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안전하게 밑바닥에서부터 받쳐주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지를 자신의 서서히 회복되는 몸으로 절절하게 겪어낸 것이다.
어느 날 오후, 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던 길에 복잡한 환승역에서 방향을 잃은 적이 있었다. 노선도를 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에게, 교복을 입은 앳된 고등학생 두 명이 먼저 다가왔다. 그들은 서툰 영어로 "메이 아이 헬프 유?"라고 묻더니, 자신들의 휴대폰 지도 앱까지 켜가며 요하네스가 가야 할 방향을 끝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는 수줍게 웃으며 사라졌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팽배한 유럽에서는 쉽게 기대하기 힘든, 타인을 향한 대가 없는 관심과 친절이었다.
그날 저녁, 따뜻하게 샤워를 마치고 숙소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 베를린 본사 사무소에서 수십 년간 함께 일해온 오랜 동료 한스가 화상 통화로 밝은 얼굴을 보이며 안부를 물어왔다.
"야, 요하네스! 수술 아주 퍼펙트하게 잘 끝나고 회복도 엄청 빠르다며? 정말 다행이다, 짜식아. 프로젝트팀원들 모두 네가 다시 예전의 그 깐깐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말도 안 통하는 그 낯선 한국 생활하느라 혼자 아프고 끔찍하게 힘들지 않았어? 빨리 베를린으로 와서 우리 시원한 맥주나 한잔해야지."
화면 속 한스의 크고 호들갑스러운 독일어 억양과 반가움에 요하네스는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대답을 멈췄다. 그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아주 신중하고 흔들림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고마워, 한스. 다들 걱정해 준 덕분이야. 그런데… 그게 말이야… 나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예전처럼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아."
화면 너머의 한스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되물었다.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너 거기서 뭐 예쁜 한국 여자랑 눈이라도 맞았냐? 아니면 병원에 너무 오래 있어서 향수병이 반대로 온 거야?"
요하네스는 노트북 너머로 보이는, 창밖으로 눈부시게 빛나며 끝없이 흐르는 서울의 역동적인 야경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지난 병실에서의 시간들과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차분히 떠올리며 마침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벼랑 끝에 내몰려 두려움에 떨던 자신을 완벽하게 살려낸 것은 결코 뛰어난 외과 의사의 정교한 칼솜씨와 첨단 수술 로봇의 정밀함만이 아니었다. 길 잃은 낯선 이방인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친가족처럼 챙겨주던 수진 대리와 병실 사람들의 계산 없는 따뜻한 마음, 상처 입은 육신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느리고 답답한 회복의 속도를 인내심 있게 존중해 준 의료 시스템,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귓가에 맴돌며 그를 위로했던 "천천히 드세요"라는 그 투박한 다섯 글자가 품고 있던, 인간에 대한 깊고 진한 애정과 온도. 그것들이 모여 차갑고 기계적으로 식어가던 그의 심장을 다시 뜨겁게, 인간답게 뛰게 만든 것이다.
"아니, 한스. 내가 사랑에 빠진 건 어떤 특정한 여자가 아니라, 넘어져 있는 사람을 기꺼이 일으켜 세워주는 이 이상하고도 따뜻한 도시 전체에 빠진 것 같아."
요하네스의 평온하고도 단호한 대답에, 화상 통화 너머의 한스는 영문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 7: 서울에서 다시 시작하기
수술 후 3개월간의 철저한 회복과 요양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베를린 본사로 마침내 복귀한 요하네스는, 오랜 동료들이 보기에도 예전과는 눈에 띄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과거 회의 시간마다 단 1분의 오차나 지연도 용납하지 않고 날 선 목소리로 팀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던 얼음장 같던 그는, 이제 누군가 치명적인 실수를 해도 책상을 내리치는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천천히 원인을 찾아서 다시 차근차근 수정해보자"라며 기다림의 여유를 보일 줄 아는 따뜻한 리더로 변해 있었다.
그는 귀국 후 며칠 동안 밤을 새워 자신의 위암 투병과 기적적인 완치 경험,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겪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압도적인 우수성과 현지 문화의 이점들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여 회사 경영진에 장문의 리포트로 제출했다. 마침 한국 협력사와의 반도체 합작 생산 라인 구축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베를린 본사에서는 향후 최소 5년 이상 서울 현지에 파견되어 거대한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할 수석 주재 엔지니어를 물색하고 있었다. 업무 강도가 살인적으로 높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아시아 문화권이라는 이유로 임원들조차 다들 눈치만 보며 꺼리던 골치 아픈 그 자리였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사내 모집 공고가 뜨기가 무섭게 임원실의 무거운 문을 박차고 들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자리,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가야만 합니다."
보고를 받던 인사팀장과 프로젝트 총괄 이사는 입을 떡 벌리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때 한국으로의 한 달짜리 단기 출장조차 가기 싫어 요리조리 온갖 핑계를 대던, 지독하게 보수적인 베를린 토박이가 아니던가. 요하네스는 동요하는 임원진 앞에서 담담하고도 논리적으로 자신이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이 한국 기업의 특수한 업무 문화와 프로젝트의 기술적 핵심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적임자라는 명분은 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 완벽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단단하게 자리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짜 절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향후 5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정기적인 추적 검진을 받아야 할 생명의 은인 같은 병원, 그리고 차가운 기계 부품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서,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다시 호흡하고 남은 반평생을 살아가야 할 제2의 삶의 터전으로 주저 없이 따뜻한 서울을 선택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첫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은 맑고 시린 겨울. 요하네스는 독일에서의 모든 살림살이와 인연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거대한 이민용 트렁크 두 개를 끌며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의 자동문을 다시 한번 걸어 나오고 있었다. 1년 전, 알 수 없는 통증과 죽음의 공포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가여운 위암 환자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2막을 개척하기 위해 굳건하게 두 발로 땅을 밟고 선 당당한 정착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자동문이 열리고 익숙한 한국의 겨울 공기가 밀려오자, 게이트 밖에서 환영 피켓을 들고 마중을 나와 있던 수진 대리가 그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요하네스 지사장님! 격하게 환영해요. 이제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라, 진짜 우리 동네 이웃이 되셨네요!"
요하네스는 트렁크를 한쪽에 세워두고, 지난 몇 달간 독일에서 매일 밤 퇴근 후 한글 교재를 펴놓고 독학으로 더듬더듬, 그러나 끈질기게 연습했던 한국어로 또박또박 그녀에게 답했다.
"안녕하세요, 수진 씨. 다시 만나서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어눌하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따뜻한 한국어 발음에, 수진은 짐짓 놀라며 이내 감동한 듯 코끝이 찡해져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새로운 서울 생활은 낯설지만 경쾌하고도 따뜻한 리듬으로 흘러갔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고즈넉한 한옥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서촌 골목에 전망이 탁 트인 아담한 오피스텔을 얻었고, 주말이면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이웃들과 섞여 북악산 자락을 오르며 건강한 땀을 흘렸다. 퇴원할 때 수진과 함께 갔던 동네 단골 전복죽집 사장님과는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 눈인사만 나누어도 알아서 슴슴한 단골용 서비스 반찬을 넉넉히 챙겨주는 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토록 복잡해 보이던 대학 병원의 정기 검진 예약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스마트폰 앱을 켜서 능숙하게 한국어로 예약하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했다.
그에게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마다 윗옷을 걷어 올리고, 흉터가 길게 남은 명치 부위에 가만히 오른손을 얹어 보는 새롭고 경건한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 그 수술 자국 위엔 숨을 조이던 끔찍한 통증이나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죽음에 대한 차가운 두려움은 단 1퍼센트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일정한 박자로 팔딱이는 따뜻하고 힘찬 심장 박동과, 내가 오늘 하루도 온전히 살아있다는 그 경이로운 감사함만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올 뿐이었다.
어느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추운 겨울 저녁. 퇴근 후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단골 국밥집 구석 자리에 홀로 앉아 뚝배기를 묵묵히 비우던 요하네스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산더미 같은 서류 뭉치를 들여다보며 허겁지겁 뜨거운 국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쿨럭거리는 새내기 직장인 청년을 보게 되었다. 그 시간에 쫓기는 듯한 위태롭고 안쓰러운 모습에서 과거 베를린 시절, 숨 막히게 일만 하던 자신의 삭막했던 옛 모습을 발견한 요하네스. 그는 국밥을 먹던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고,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청년을 향해 부드럽고 다정한 한마디를 건넸다.
"젊은 친구. 그렇게 쫓기듯 급하게 먹으면 속 다 상하고 체합니다. 밥은… 천천히… 드세요."
푸른 눈의 덩치 큰 외국인이 건넨 유창하고 정감 어린 한국어 참견에 청년은 잠시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팽팽했던 긴장이 풀린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넵!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천천히 먹겠습니다."
요하네스도 청년을 따라 소리 내어 호탕하게 웃었다. 식당의 통유리 창밖으로는 포근한 함박눈이 서울의 밤거리를 하얗고 아름답게 덮고 있었다. 한때 베를린의 잿빛 하늘 아래서 1나노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하고 차가운 반도체 회로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감정마저 메말라가던 완벽주의자 남자는, 이제 눈 내리는 서울의 느리고 다정한 온기 속에서 비로소 진짜 자신이 살아갈 두 번째 인생의 도면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따뜻한 온도로 설계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독일의 차가운 완벽주의자 엔지니어가 서울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생명을 되찾은 기적 같은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첨단 의료 기술보다 더 위대했던 건, 낯선 이방인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고 "천천히 드세요"라며 회복을 응원해 준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정(情)이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밥 한 끼조차 급하게 삼키고 계시진 않은가요? 오늘 하루만큼은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천천히' 삶을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감동적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따뜻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훈훈한 휴먼 스토리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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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서울의 병원 병실 창가, 환자복을 입은 외국인 남성이 침대에 앉아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보며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 따뜻하고 희망적인 분위기, 16:9 비율, 수채화, 글자 없음
By the window of a hospital room in Seoul with warm sunlight shining through, a foreign man in a patient's gown sitting on the bed, looking at the clear sky outside and smiling peacefully, warm and hopeful atmosphere, 16:9 ratio, watercolor, no text